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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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글 범위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약간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된 서평입니다.)

 

14년 전에 실종된 딸 레나로 추정되는 여자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마티아스는 이내 레나가 아니라 야스민이라는 여자임을 확인하곤 절망에 빠집니다. 그런데 병원 복도에서 레나의 어린 시절과 꼭 닮은 소녀 한나를 발견하곤 충격에 빠집니다. 조사 결과 실제로 한나는 레나의 딸로 밝혀집니다. 그런데 한나는 교통사고로 입원한 야스민을 엄마라고 불러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야스민은 괴한에게 납치당한 뒤 4개월간 납치범의 아내이자 한나의 엄마 레나로 살아오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털어놓습니다. 퇴원 후 야스민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납치범의 정체와 그가 레나와 자신을 납치한 이유, 그리고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숲속 오두막에서 아이들을 키워온 이유를 알아내고자 애씁니다.

 

이야기의 뼈대는 한 사이코패스에 의한 잔혹하고 일그러진 납치극정도로 심플해 보이지만 사랑하는 아이는 평범한 소재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특별한 서사와 개성을 지닐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14년 전 실종된 레나, 4개월 전 납치된 뒤 폭력과 공포 속에 레나로 살아야만 했던 야스민, 레나의 딸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야스민을 자연스레 엄마라고 부르는 소녀 한나, 그리고 딸을 잃은 상심을 손녀 한나를 통해 보상받고 싶은 것은 물론 야스민에게서 레나에 관한 단서 하나라도 알아내고 싶은 절박한 심정의 마티아스 등 다양한 화자들이 들려주는 기이한 납치극의 진상은 상투적이고 예측 가능한 이야기를 뛰어넘어 읽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게 해줍니다.

 

출판사의 소개글만 보고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건 야스민은 레나라는 여자의 대타로 납치됐고, 무슨 이유에선지 레나로 살아갈 것을 강요당했다는 점입니다. 이 설정까지만 해도 남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초반부터 독자의 눈길을 끄는 점은 레나가 낳은 것이 분명한 한나가 아빠에 의해 납치된 야스민을 태연스레 엄마라고 부르는 점입니다. 또 야스민이 지독한 폭행을 당하는 걸 목격하고도 두려워하거나 동정하기는커녕 엄마가 실수해서 벌을 받는 거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장면도 그저 기이해보일 뿐입니다.

이 미스터리의 열쇠는 그들이 사는 숲속 오두막에 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국경지대의 숲속에 자리한 오두막은 모든 창문이 틀어 막혀 햇빛 한 톨 들어올 틈도 없는 완벽한 감옥입니다. 이 기이한 공간이 한나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가를 지켜보는 건 사건 자체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 작품이 단지 탈출에 성공한 야스민이 진범의 정체를 밝히고 실종된 레나의 진실을 알아내는 이야기에 그쳤다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과 대동소이했겠지만, 세상과 단절된 채 오로지 두꺼운 책을 통해 지식을 쌓아온 한나라는 캐릭터 덕분에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는 납치범인 아빠와 공범이라도 되는 듯 야스민을 위기에 몰아넣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더욱 요동치게 만듭니다. 또 자신을 실종된 딸이 남긴 소중한 손녀로 여기는 마티아스를 대하는 장면에선 마치 어린 소시오패스마냥 천진난만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발산하는데, 그래선지 과연 한나가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독자와 마주하게 될지 사뭇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건 자체를 이끌어 가는 건 어떻게든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 자신과 레나를 납치한 이유를 확인하려는 야스민과 그녀를 통해 실종된 딸 레나의 진실을 밝히려 애쓰는 마티아스입니다. 두 사람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다 극성스런 언론의 표적이 된 신세지만 레나의 진실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합니다. 평범한 일반인이다 보니 슈퍼히어로 같은 활약을 기대할 순 없는데, 이 부분은 마티아스의 친구인 게르트 브륄링 경감의 적절한 지원을 통해 해결됩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숲속 오두막의 주인인 납치범, 14년 전 납치되어 아이까지 낳은 레나, 그녀의 대타로 납치된 야스민, 14년 동안 실종된 딸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마티아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소녀 한나가 펼치는 독특한 납치 스릴러 사랑하는 아이는 흥미진진함은 물론 여러 가족에게 닥친 끔찍한 비극의 여운까지 전해주는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딱히 납치극에 관심 없는 독자라도 순식간에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이니 충분히 기대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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