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99
제프 린지 지음, 고유경 옮김 / 북로드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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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최고의 도둑을 자처하는 라일리 울프는 천재적인 절도범이자 화려한 곡예로 빌딩 숲을 활주하는 파쿠르(Parkour) 실력자이면서 필요할 땐 살인도 서슴지 않는 냉혹한 킬러다. ‘21세기의 뤼팽이라 할 그의 목표는 상류층이다. 부도덕한 부자들로부터 그들이 목숨처럼 귀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빼앗는 행위 자체가 라일리에게는 쾌감의 원천이다. 그런 라일리 울프의 눈에 이란 황실의 보물, ‘빛의 바다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 최대의 핑크 다이아몬드 다리야에누르가 들어온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을 위한 국보 상호교환 전시로 다리야에누르가 미국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직접 테헤란까지 날아가 다이아몬드를 보고 완전히 매료되어 그것을 훔치기로 결심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헌신적이고 친절하고 달콤한 킬러덱스터 모건을 앞세운 덱스터 시리즈로 잘 알려진 제프 린지(Jeff Lindsay, 한국에 출간된 덱스터 시리즈에는 제프 린제이로 표기됨)가 이번에는 천재적인 대도(大盜) 라일리 울프라는 캐릭터를 창조했습니다. 백주대낮에 12.5톤에 달하는 동상을 태연히 훔칠 정도로 대담한 라일리는 언뜻 덱스터와 닮은꼴로 보입니다.

끔찍한 흉악범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긴 하지만 그 동기가 정의감과는 전혀 무관한, 즉 대상이 흉악범일 뿐 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잔혹한 소시오패스가 덱스터라면, 라일리는 부도덕한 부유층을 노리긴 하지만 부의 공평한 분배나 사회적 정의와는 거리가 먼, 어찌 보면 개인적인 복수 같기도, 달리 보면 돈 그 자체를 위한 게임 같기도 한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필요하다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대목에선 덱스터 못잖은 소시오패스 기질까지 엿보입니다. 요약하자면 천재적인 도둑 재능까지 갖추게 된 덱스터라고 할까요?

 

라일리의 가장 큰 고민은 모든 일이 너무 쉽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 앞에서 초대형 동상을 훔치고도 보람도 자부심도 못 느꼈던 건데, 그런 그에게 도전욕구를 불지른 것이 바로 이란 황실의 보물 다리야에누르입니다. 1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가치뿐 아니라 보석으로서의 최고의 아름다움까지 지닌 다리야에누르는 가히 라일리가 탐낼 만한 명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석 자체보다 라일리를 들끓게 만든 건 철벽과도 같은 보안시스템입니다. 최첨단 장비에 전직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된 용병과 이란 혁명수비대까지 가세한 탓에 성공 가능성은 0.0001%도 채 되지 않아 보입니다. 흥분지수가 최고조로 올랐던 라일리가 절망에 사로잡힌 건 이 때문입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한 편의 복잡한 플롯의 영화 시나리오와도 같은,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몇 배 이상 발휘해야 하고 그만큼의 행운까지 따라줘야만 하는 고난이도의 전략입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치명적인 침입 작전이라고 할까요?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라일리를 쫓는 FBI요원 프랭크 델가도의 추격전입니다. 라일리의 본명도 얼굴도 모르지만 오직 그를 체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델가도의 집착은 그가 유능한 요원이 아니었다면 진작 FBI에서 쫓겨나고도 남을 만큼 강박에 가깝습니다. 이란 황실의 보물이 라일리의 다음 타깃이라고 확신하지만 끝내 상부를 설득하지 못한 델가도는 휴가를 내고 개인적으로 라일리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미약한 단서들을 쫓아 라일리의 유년기부터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독자는 델가도의 행보를 통해 라일리의 개인사와 가족사, 특히 그를 대도이자 소시오패스로 성장하게 만든 비극들을 접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보물 하나 훔치는 이야기지만 역시 덱스터 시리즈의 창조자답게 작가는 흥미진진한 케이퍼 스릴러를 완성시켰습니다. 다만 이야기는 그리 복잡하지 않고, 희대의 도둑질 자체도 (준비과정은 엄청 치밀하고 정교했지만) 뒤통수를 치는 맛이 강렬하지 못합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주인공 라일리의 캐릭터인데, 필요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긴 해도 결국엔 도둑이다 보니 주특기(?)가 살인인 덱스터에 비해 말랑말랑해 보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인 의문 도둑질의 동기 혹은 목적은 무엇인가? - 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아서 그의 화려한 행적에도 불구하고 깊이 이입할 수 없었던 게 더 큰 이유입니다. FBI요원 델가도에 의해 밝혀진 그의 과거, 즉 평범한 소년이 괴물이 된 과정 역시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고, 덱스터와 마찬가지로 라일리도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은 걸로 설정돼있지만 무게감이나 충격의 강도는 훨씬 약해 보였습니다. 더불어, ‘정의로운 도둑이 선사하는 쾌감이라곤 전혀 맛볼 수 없는 라일리의 캐릭터는 독자에 따라 비호감으로 여겨질 여지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라일리 울프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찰(탐정)이나 살인자가 주인공인 경우와 달리 도둑의 이야기는, 그것도 라일리 같은 캐릭터의 도둑이라면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또 데뷔작에서처럼 라일리의 캐릭터가 다소 모호하게, 그리고 비호감에 가깝게 그려진다면 계속 지켜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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