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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는 소녀와 축제의 밤
아키타케 사라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월
평점 :
고교교사 사카구치, 2학년생 이토카와, 1학년생 아사이. 이들은 하나같이 현실에서는 일어날 리 없는 괴이한 현상을 목격하거나 그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까지 몰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가 남다른 분위기를 지닌 2학년생 마쓰리비 사야의 도움으로 각자의 위기에서 벗어난 바 있습니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와 대화를 나누며 각종 기담과 괴담을 전해들은 오빠 덕분에 사야는 어린 시절부터 보통사람은 알 수 없는 괴이한 현상들에 대해 익숙했고, 그 지식을 활용하여 위기에 처한 세 사람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야가 어느 날 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마을 축제날 밤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전설의 마물로부터 오빠를 구해달라는 것입니다. 마물에게 ‘잡아먹히기로 돼있는’ 오빠를 구하려면 누군가 미끼가 되어 밤새 마물을 유인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호러 마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늘 관심을 두고 흥미로운 설정이나 캐릭터가 눈에 띄면 찾아 읽는 편입니다. ‘후회하는 소녀와 축제의 밤’은 공포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기반으로 애틋함 가득한 서사를 일궈낸 독특한 작품입니다. 호러지만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고 할까요? 괴이한 현상에 시달리다가 마쓰리비 사야의 도움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는 세 사람의 사연이 앞의 세 챕터를 통해 소개되고, 이어 마지막 챕터인 ‘축제날 밤에’는 사야의 오빠를 구하기 위해 마물과 맞서는 사야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맞닥뜨린 괴이한 현상은 특별하거나 새롭다고 할 순 없지만 꽤 흥미롭게 설정돼있습니다. 길쭉한 팔과 노랗게 빛나는 눈을 지닌 채 수상한 소리를 내며 낡은 학교건물의 마루판을 뒤집는 ‘그것’, 막힌 공간에서도 자유자재로 출몰하는 어른 팔뚝만한 지네 ‘니지리무시’, 그리고 인간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곤 10년 후 그 대가로 그(녀)의 몸을 회수해가는 기괴한 남자 ‘시게토라’ 등 미야베 미유키와 미쓰다 신조의 괴담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이물(異物)들이 등장합니다. 심하게는 죽음의 위기까지 실감한 적 있는 세 사람은 때마침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야 덕분에 평온한 일상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 때문에 누구도 믿지 않을 기담과 괴담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고, 보통사람이라면 코웃음 쳤을 사야의 간절한 부탁 – 축제날 밤에 나타나 오빠를 잡아먹을 마물을 유인하는 미끼가 되어 달라는 - 을 흔쾌히 수락하게 됩니다.
중반부쯤 시작되는 사야와 세 사람의 ‘마물 유인작전’까지는 일반적인 호러물의 공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후로는 뜻밖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앞서 언급한대로 ‘애틋함 가득한 서사’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특히 사야가 작전 자체에 관해, 또 마물에게 잡아먹힐 예정인 오빠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지 않은 점을 간파한 사카구치는 수학교사답게 논리적인 추리를 벌여 사야가 감춘 충격적인 비밀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그 지점부터 마물을 유인하는 작전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祭火小夜の後悔’, 즉 ‘마쓰리비 사야의 후회’입니다. 오빠를 마물로부터 지켜내려는 사야의 회한 가득한 감정도 ‘후회’이고, 그녀가 감춘 비밀을 알아낸 사카구치가 자신만의 ‘또 다른 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심한 감정도 ‘후회’입니다. 위기일발의 마물 유인작전이 애틋함 가득한 서사, 또는 ‘역자 후기’의 부제대로 “공포소설에 서정성을 더한 색다른 시도”로 읽힐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런 설정 때문입니다. 이질적인 두 개의 서사가 뒤섞였지만, 그 덕분에 특별하고 묘한 여운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제대로 무서운 호러를 기대한 독자에겐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애틋함과 서정성이 깃든 호러에 관심이 발동한 독자라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후속작인 ‘祭火小夜の再会’(마쓰리비 사야의 재회, 2020년)가 출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