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뿌리는 자 스토리콜렉터 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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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놓고 개발회사 윈드프로와 시민단체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회사 경비원과 시민단체의 대표가 연이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고로 보였던 경비원의 죽음은 과학수사 결과 살인의 가능성이 제기됐고, 거액의 보상 제안을 뿌리치고 풍력발전단지 건설에 반대해온 시민단체 대표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됐습니다. 호프하임 강력 11팀의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개발회사 관계자들에게서 수상쩍은 느낌을 받지만 동시에 시민단체의 내분에도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특히 개발회사 전직 직원이면서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쳐온 재니스는 여러 면에서 유력한 용의자 후보로 보입니다. 하지만 살해된 시민단체 대표의 자식들 역시 범행동기가 충분해서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좀처럼 수사 초반에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바람을 뿌리는 자는 호프하임 경찰서 강력 11팀의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주인공으로 한 타우누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앞선 네 작품이 (한국 번역본 기준으로) 300페이지 중반에서 많아야 500페이지 초반 정도였던 것에 반해 바람을 뿌리는 자는 거의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인데, 그만큼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도 다양해서 간략하게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우선 두 사건은 어떻게 봐도 동일범의 소행 혹은 연장선상의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두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덕분에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은 많지만 어디에서도 확실한 실마리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한 메인 사건과 연관이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인물들이 꽤 중요한 화자로 등장하는 바람에 과연 이들이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둘러싼 살인사건과 어떤 식으로 연결될지, 연결되긴 되는 것인지 무척 궁금해지게 됩니다.

 

가장 흥미로운 건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진두지휘해야 할 반장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외적인 것들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보덴슈타인의 행보입니다. 아버지 하인리히 백작이 풍력발전단지 개발의 갈등 한복판에 휘말리면서 보덴슈타인은 잠시나마 보상금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은 물론 그 사실 자체를 감추는 바람에 큰 곤경에 처합니다. 더구나 아내 코지마에게 배신당한 상처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그는 사건관련자 중 한 명인 여성에게 푹 빠져버리는데, 문제는 그녀 역시 결코 가볍지 않은 미스터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피아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신에게 수사를 떠맡긴 채 밖으로만 도는 보덴슈타인에게 격분하지만 4년을 함께 지낸 파트너답게 인내심을 갖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사실, 막판에 드러난 진실만 놓고 보면 사건의 얼개는 무척 단순합니다. 모든 것이 부와 명예와 허영을 향한 일그러진 탐욕에서 비롯됐고, 진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은 충격이라기보다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범인이었다.”라고 보일 정도로 정석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8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가능했던 건 비밀과 거짓말, 사랑과 증오, 믿음과 배신 등 등장인물들 사이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디테일하게 묘사된 점, 그리고 보덴슈타인의 개인적인 고민과 일탈을 그린 대목들이 적잖은 분량을 차지한 점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앞선 타우누스 시리즈가 그랬듯 바람을 뿌리는 자역시 대단한 페이지터너여서 시작부터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인물관계도라도 그려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 정도로 인물과 사건이 복잡하게 설정된 것은 여전하지만 말입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기 전, 이 작품을 처음 읽었던 10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을 땐 다소 허전하거나 단순했다.”라는 인상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이 시리즈의 대표작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읽고 난 직후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바람을 뿌리는 자는 전혀 허전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숙성된 시리즈의 깊은 맛과 함께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물론 조금은 사족 혹은 과잉처럼 보인 대목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사건의 규모나 질감에 비해 분량 자체가 다소 부풀려진 점은 아쉬웠습니다. 막판 반전 역시 앞서 언급한대로 기대에 못 미쳤던 게 사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는 책읽기를 만끽할 만큼 미덕이 더 컸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완벽한 젠틀맨 같던 보덴슈타인의 연약하고 인간적인 모습과 그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쑥쑥 성장하는 피아의 카리스마는 순서대로 다시 읽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재미라서 여타 아쉬움들을 다 덮게 해준 1등 공신이었습니다. 이야기나 사건보다 주인공의 매력에 푹 빠져 시리즈를 탐독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타우누스 시리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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