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21.겨울호 - 72호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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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광팬이라 자처하면서도 그 분야를 다룬 평론이나 문예지 혹은 장르물 잡지를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뭐랄까, 어렵고 학구적일 거란 선입견도 작용했고, 직접 읽은 작품의 후반부에 실린 해설이라면 모를까, 광범위하고 원론적인 주제에 대한 전문가의 식견은 그리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간 미스터리 2021 겨울호를 접하게 된 건 순전히 제가 가입한 네이버 카페 러니의 스릴러 월드를 소개한 글이 실렸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긴 분량은 아니지만 종종 서평도 올리고 댓글도 자주 달곤 하는 카페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내용은 제법 흐뭇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카페 소개글 외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270여 페이지의 분량 안에 담긴 다양한 글들을 읽으면서 내심 놀랐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특히 여성 캐릭터 리부트라는 제목 하에 실린 죽어야 하는 여자들’(듀나), ‘추리 소설의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한이)는 그동안 장르물을 읽으면서 여러 번 생각했던 바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어서 무척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살해 혹은 고문당하는 장면조차 관음증의 대상으로 여겨진 여성 캐릭터의 문제라든가 그것을 고의적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애용해온 작가들의 태도, 그리고 마초 주인공이 날뛰던 하드보일드 시대에 더욱 저급한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찰 등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내용들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신인상 수상작’, ‘단편소설’, ‘특별 초청작’, ‘미니픽션’,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트릭의 재구성등 다채로운 미스터리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는데, “확실하게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단편 혹은 미니픽션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도 꽤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소름 돋을 정도로 잔인하지만 동시에 정갈하기(?) 짝이 없는 소시오패스를 그린 인간을 해부하다’(류성희)는 장편으로의 확장이 기대되는 작품이었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소재인 장기 기증을 일종의 복수코드와 접목시킨 토요일의 예고 살인’(황세연)은 비록 미스터리 자체는 평범했지만 설정 자체가 매력적이라 무척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나도 한 번 써볼까?”라는 소심한 욕심을 품기 마련인데, 수록된 미스터리 작품들을 보며 그런 욕심이 조금은 더 생긴 게 사실입니다. 물론 타고난 재능도 없고 연마한 필력도 없으니 그저 소박한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어쩌면 계간 미스터리덕분에 무모한(?) 도전에 나서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처음 접한 미스터리 전문 잡지의 독특한 재미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과월호도 찾아보고 싶어졌고 앞으로 나올 신간들 역시 그 목차를 눈여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미스터리의 탄탄한 토대를 위해, 또 화수분처럼 재능 있는 한국 장르물 작가들의 산실로서 앞으로도 계간 미스터리가 늘 건승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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