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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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워싱턴 주의 소도시 시더 그로브에서 18살 세라가 실종된 직후 인근에 사는 성범죄 전과자 에드먼드가 체포됩니다. 세라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에드먼드는 정황증거만으로 1급 살인죄와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어느 날, 세라의 유골이 발견되자 동생의 실종 이후 한시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애틀경찰국 강력계 형사 트레이시 크로스화이트는 그동안 자신이 품어왔던 의심이 사실이라고 확신하며 주위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라의 죽음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20년 전 빈약했던 정황증거와 석연치 않은 법정공방 끝에 에드먼드의 유죄를 이끌어낸 건 다름 아닌 트레이시 자매의 아버지, 시더 그로브의 보안관, 그리고 검사와 변호사 등이었는데, 트레이시의 눈에는 그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으며 어쩌면 진범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내 동생의 무덤은 다채로운 장르가 잘 버무려진 스릴러입니다. 20년 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치열한 미스터리+법정 스릴러이자 시애틀경찰국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의 거침없는 활약을 그린 형사물이며, 동생을 잃고 가족이 붕괴된 뒤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온 평범한 한 여성의 비극을 그린 가족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세라의 죽음의 진실을 찾으려는 트레이시의 여정은 가시밭길 그 자체입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첫 과제가 20년 전 아버지와 보안관을 비롯한 모든 사법기관이 범인으로 지목한 잔혹한 성범죄 전과자 에드먼드가 무죄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 때문인데, 그로 인해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시더 그로브 사람들은 트레이시에게 차갑고 냉정한 시선만 보낼 뿐이며, 당시 수사를 맡았던 노회한 보안관 캘러웨이는 노골적으로 트레이시의 행보를 막아섭니다. 더불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트레이시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시애틀경찰국 수사국장의 압박까지 더해져 트레이시의 운신의 폭은 극도로 불리한 지경에 처합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트레이시의 지원군이 돼준 건 어린 시절 친구이자 지금은 변호사가 된 댄 올리리입니다. 그녀의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댄은 당시 에드먼드를 유죄로 몰아간 자들의 행동과 법정에서 거론된 증거들을 재조사한 뒤 공식적인 재심 절차에 돌입합니다.

 

동생의 죽음의 진실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비롯하여 자신과 친밀했던 사람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또 진범을 찾기 위해 잔혹한 성범죄 전과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만에 하나, 성범죄 전과자만 풀어준 채 아무런 진실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최악의 가능성 등 피를 말리는 재조사에 있어서 트레이시에게 긍정적인 요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트레이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20년 전의 진실을 향해 오로지 돌직구처럼 달려들 뿐입니다. 때론 운이 따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예리한 추리와 성실한 발품으로 성과를 얻어내는 트레이시의 행보는 독자의 눈길을 한시도 다른 곳으로 향하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모든 것이 밝혀지는 중후반부의 반전의 대목은 전혀 새로운 전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놀라움과 함께 마음 한쪽을 서늘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전은 트레이시가 오랫동안 참아왔던 격한 감정을 일시에 터지게 만들고 맙니다.

 

이런 구도 덕분에 독자는 마지막 장까지 숨 가쁘게 가속만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에 탄 기분을 만끽하게 되는데, 범죄스릴러와 법정스릴러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야기는 한때 그 분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존 그리샴을 떠올리게 했고, 그중에서도 (줄거리는 가물가물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펠리컨 브리프의뢰인의 감흥을 기억나게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이 2014년에 출간된 점, 또 이후 현지에서 트레이시 크로스화이트 시리즈8편까지 나온 점을 감안하면 왜 이제야 한국에 소개됐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다행인 건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지만) 시애틀경찰국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로서 마초들 틈바구니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 열혈 캐릭터 트레이시의 맹활약을 접할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대도시 시애틀을 무대로 강력범죄와 치열한 전쟁을 벌일 트레이시의 모습이 더 기대되는데, 그 기대대로 머잖아 후속작들이 연이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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