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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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IT기업 스피라링크스의 신입사원 공채에서 5,00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최종 전형까지 살아남은 단 6. 그들은 한 달 후에 열릴 팀 토론을 통해 시너지 효과만 보여준다면 모두 합격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그들은 열정적인 노력은 물론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품으며 한 달의 시간을 알차게 준비합니다. 하지만 토론 직전 합격자는 단 한 명. 팀 토론을 통해 누구를 합격시킬지 결정할 것.”이라는 날벼락 같은 연락을 받습니다. 한순간에 적이 되어버린 상황에 아연실색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토론장에서 벌어집니다. 누군가 갖다 놓은 의문의 봉투에 지원자 각각의 치명적인 비밀을 폭로한 고발장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초 누가 합격되더라도 수긍하겠다던 호의적인 분위기는 급변하고 고발장으로 인해 치부가 드러난 인물들은 충격에 얼어붙고 맙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라면 살인이나 납치 등 강력사건과는 거리가 먼 신입사원 공채를 배경으로 한 일상 미스터리로 보여서 읽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일단 50~100페이지 정도까지만 읽어보고 취향과 안 맞으면 덮겠다는 생각으로 첫 장을 펼쳤는데, 묘하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들 때문에 단박에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이뤄져있는데, 하나는 과연 토론장에 의문의 봉투들을 갖다 놓은 자, 즉 단 하나뿐인 합격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비열하게 경쟁자들의 치부를 폭로한 자는 누구인가를 쫓는 미스터리이고, 또 하나는 한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니,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달의 뒷면마냥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 아닌가?”라는 다소 관념적인 주제를 신입사원 선발이라는 통속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그린 사회고발 메시지입니다.

 

1부가 최종 팀 토론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상황과 단 한 명의 합격자가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2부는 그로부터 8년 후 누군가팀 토론 당일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관련자들을 만나 뜻밖의 사실들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1부에서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2부에서 거듭된 반전 끝에 밝혀진 진범의 정체와 그 동기에 대해선 꽤 의외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부터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 “한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 아닌가?” - 라는 주제가 잔잔한 반전과 함께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일상을 함께 하는 가족조차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하물며 기껏해야 몇 달에서 몇 년에 걸쳐 그저 달의 앞면만 봤을 뿐인 타인끼리 서로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다면 불과 한 달 동안 몇 차례의 회동만을 가졌을 뿐인 6명의 팀 토론 참가자들은 어땠을까요? 또 몇 분에서 몇 십 분에 지나지 않는 면접이란 자리는 얼마나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걸까요? 오류의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이 상황들 속에서 누군가 상대방을 잘 알게 됐다.”라고 말한다면, 또는 상대방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잘 알게 됐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오만함 그 자체가 아닐까요?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은 다소 고리타분해보일 수도 있는 이 주제를 흥미로운 미스터리와 잘 결합시켜 놓았습니다.

 

강력사건과는 거리가 먼, 그렇다고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은 미스터리의 미덕은 물론 이것저것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준 특별한 작품입니다. 독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밍밍하지 않을까, 라는 선입견을 갖게 만들 수도 있지만 의외의 재미를 만끽할 수도 있는 작품이라 나름 기대를 가져도 괜찮을 거란 생각입니다.

 

재미있는 건 한국에 처음 소개된 아사쿠라 아키나리의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를 읽었을 때도 제 취향과 거리가 먼 초능력을 전면에 내세운 탓에 100페이지 정도만 읽고 중간에 포기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첫 장을 열었는데, 의외로 눈길을 끄는 이야기에 금세 마지막 장까지 한 번에 완주했습니다.”라는 서평을 남겼다는 점입니다. 두 편 모두 설정은 제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솜씨에 홀딱 반했던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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