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키스 스토리콜렉터 98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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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피오르 해안에 자리한 소도시 크리스티안순에서 IT기업 인턴사원의 피살체가 발견됩니다. 치밀한 계획과 지독한 증오심이 엿보이는 사건이지만 수사과장 플레밍 토르프는 좀처럼 단서를 잡지 못해 답답할 뿐입니다. 같은 시간, 한때 연적이었지만 여전히 절친으로 지내고 있는 플레밍을 도와 외국인 여성노동자 살인사건을 해결하여 대머리 탐정이란 별명과 유명세까지 얻은 광고 카피라이터 단 소메르달은 딸 라우라의 부탁으로 결혼사기를 당한 50대 여교사 우르술라를 만납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정식 의뢰를 받아 사립탐정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문제는 단이 구해온 결혼사기꾼의 지문이 플레밍이 맡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플레밍은 어쩌면 외국인 여성노동자 살인사건 때처럼 단 때문에 또다시 자신과 경찰이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힙니다.

 

유다의 키스2020년 봄에 출간된 이름 없는 여자들의 뒤를 잇는 단 소메르달 시리즈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혀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아나 그루에가 덴마크 작가란 점 때문에, 즉 차갑고 잔혹한 북유럽 스릴러를 맛볼 수 있다는 기대 하나 때문에 선택했던 작품인데, 고백하자면, 아무 정보도 없이 읽다가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파악한 시점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기대했던 북유럽 스릴러의 톤과는 전혀 다른 코지 미스터리가 전개됐기 때문입니다.

단과 플레밍은 오랜 절친이지만 단의 아내 마리아네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플레밍의 여친이었고, 이 사실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둘 사이에 앙금 아닌 앙금처럼 존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플레밍이 마리아네의 뺨에 키스를 할 때면 단의 혈압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물론 둘 사이엔 아무 일도 없지만 말입니다. 이런 두 사람이 살인사건을 놓고 협업과 갈등을 벌이며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이 시리즈의 핵심입니다.

 

이름 없는 여자들에서 두 사람은 팽팽한 갈등 끝에 각자 수사를 진행한 뒤 자신들이 획득한 정보와 추리를 공유하기로 타협한 바 있지만, ‘유다의 키스에서는 거의 단이 주도권을 쥔 채 수사과장 플레밍과 경찰을 곤혹스럽게 할 정도로 저돌적인 수사를 펼쳐나갑니다. 살짝 다혈질이지만 연륜을 자랑하는 플레밍은 자칫 사건을 망치고 범인을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는 단의 광폭행보에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본업인 광고 카피라이터만큼이나 뛰어난 수사관으로서의 을 지닌 단의 성과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지경을 여러 차례 겪게 됩니다.

 

플레밍이 담당한 살인사건과 단이 조사하는 결혼사기사건이 우연히도 지문이라는 접점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는 코지 미스터리를 벗어나 심각한 수준으로 격상됩니다. 단이 쫓는 결혼사기꾼의 행각은 피해 여성이 한둘이 아님이 밝혀지고 그 수법도 지능적이고 정교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단순사기로 볼 수 없는 중대범죄로 규정됩니다. 또 결혼사기꾼과 살해된 IT기업 인턴사원의 배경에 엄격한 규율을 지닌 종교단체가 있음을 알아낸 단과 플레밍은 애초 예상과 달리 사건이 꽤 복잡하게 꼬여있으며 비극적인 가족사까지 연루된 사실을 깨닫습니다.

 

흥미롭게 읽었지만 별 1개를 뺀 유일한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 단의 공명심과 이기심때문입니다. 직접 찾아낸 단서와 정보가 아깝기도 하지만 처음 정식으로 의뢰받은 내 사건이란 인식 탓에 단은 어떻게든 경찰을 배제하고 자신이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은 나머지 무리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호기심과 욕심에 사로잡혀 수사를 망칠 수도 있는 행보를 멈추지 않는 단의 모습은 때론 민폐 캐릭터로 보일 정도로 불편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선지 이름 없는 여자들과 달리 사건을 해결한 단에게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었는데, 독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그의 공명심과 이기심때문에 비호감의 인상이 강하게 남고 말았습니다. 또 아마추어인 단의 수사에 행운이 과도하게 많이 따른 점과 막판에 밝혀진 결혼사기범의 범행 동기가 다소 억지스럽게 설명된 점 역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들이라 별점을 삭감하게 된 이유입니다.

 

이 시리즈가 7편이나 출간됐고 TV시리즈로 제작되어 세 번째 시즌을 앞둔 점만 봐도 캐릭터와 스토리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데, ‘유다의 키스는 코지 미스터리의 매력과 스릴러의 미덕이 잘 믹스된 서사도 만족스러웠고, 매끄러운 전개와 간결하고 생기 넘치는 문장들도 전작 못잖게 눈길을 끈 작품입니다. 앞서 언급한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단 소메르달 시리즈를 한국에서 계속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유일한 바람이라면 부디 단이 더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민폐까지 끼치며 독주하는 일만은 자제해줬으면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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