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워칭 유
테레사 드리스콜 지음, 유혜인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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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행 기차를 탄 중년여성 엘라는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20대 남자들이 런던이 초행인 10대 소녀들을 유혹하는 위험한 상황을 목격합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서 엘라는 소녀들을 도우려던 생각을 접습니다. 다음 날 소녀들 중 한 명인 애나 밸러드가 실종됐다는 뉴스를 본 엘라는 충격에 빠집니다. 더구나 목격 증언을 한 뒤로 엘라는 기차에서 애나를 돕지 않았다며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맹비난을 받는 처지가 됩니다. 사건 1주년 특별방송 즈음, 엘라를 비롯하여 애나 주위의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비밀이 혹시라도 애나의 실종과 이어져 있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한편 엘라는 익명의 검은 엽서를 받는데, 거기엔 1년 전 그녀의 실수를 비난하는 협박 메시지가 적혀있습니다.

 

1년 전 실종된 애나를 찾는 이야기(누가 애나를 납치했나?)와 현재 엘라에게 협박 엽서를 보내는 자가 누구인지를 찾는 미스터리가 핵심이지만, 오히려 애나의 실종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의 비밀과 두려움을 다룬 심리 스릴러의 성격이 더 강한 작품입니다.

기차에서 애나를 돕지 않은 일 때문에 사회적인 비난은 물론 그녀 스스로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던 엘라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과 가정의 뿌리까지 뒤흔들리는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실종 당일 애나와 동행했던 세라는 혹시 자신의 무모한 행동 때문에 애나가 끔찍한 짓을 당한 게 아닐지 두려워합니다. 애나의 아버지 헨리는 실종 당일 애나가 자신에게 실망하며 격분했던 일도 걱정되지만, 그날 자신의 행적을 거짓으로 진술했던 일 때문에 더욱 전전긍긍합니다. 엘라에게 고용된 전직 경찰이자 사설탐정인 매슈는 검은 엽서의 발신자를 찾기 위해 애쓰면서 동시에 애나 실종사건의 실마리를 잡으려는 노력도 병행합니다.

 

엘라를 포함하여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여러 명의 화자가 번갈아 챕터를 이끌어 가는데, 덕분에 애나 실종사건의 이면에 얽힌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사정이 사건 자체보다 더 눈길을 끕니다. 이런 설정은 사건의 단순성을 극복하는 힘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사건 자체를 덜 흥미롭게 만드는 약점도 갖고 있습니다.

애나 실종사건 자체와 별 관계없는, 그러니까 어차피 벌어졌을 일들이 꽤 많은 분량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인데, 실종사건과 무관하게 별거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애나 부모의 사정이라든가, 애나의 실종에 가장 큰 죄책감을 갖고 있는 세라의 끔찍한 가족사, 경찰을 그만두고 탐정의 길을 택한 매슈의 개인적인 사정 등이 그것입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모두 흥미롭긴 하지만, 정작 중심 사건인 애나의 실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특히 막판에 밝혀진 애나 실종사건의 진실과 범인의 정체는 반전이라기보다는 조금은 뜬금없기도 하고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억지스럽게 보여서 이 작품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실종 미스터리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그렇다고 심리스릴러로 보기에는 각 인물의 에피소드가 독립성이 너무 강해서 중심사건과 무관한 따로국밥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종사건에 연루된 주변 인물들의 내밀한 비밀은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게 포장됐던 실종 미스터리가 너무 맥없이 풀리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엔딩이 되고 말았다고 할까요? 마지막 장을 덮은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어떤 이야기를 읽은 건지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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