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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식범 ㅣ 케이스릴러
노효두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1월
평점 :
‘면식범’은 고즈넉이엔티의 ‘케이스릴러’ 중 27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11번째 만난 작품인데, 다소 편차는 있더라도 그동안 읽은 작품들 모두 개성과 매력을 갖춘 수작들이긴 했지만, ‘면식범’은 탄탄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미스터리 스릴러가 잘 조합된 명품으로 그 어느 ‘케이스릴러’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전직 경찰이자 지금은 유명한 범죄 심리학자인 도경수는 어느 날 갑작스런 교통사고 후 누군가에게 납치됩니다. 감금된 채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들을 떠올리던 도경수는 얼마 후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합니다. 납치범 중 한 명의 얼굴이 자신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곧 자신이 납치당한 이유가 6년 전 한 소녀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가족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출판사 홍보카피에 들어간 ‘페이스 스릴러’라는 표현 때문에 자칫 이 작품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독자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페이스 스릴러’가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건 맞지만 결코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등장인물 모두의 심장을 한없는 무게로, 그것도 영원히 짓누를 죄와 벌에 관한 서사라는 게 더 정확한 설명입니다.
6년 전, 한 소녀의 죽음에서 시작된 두 가족의 비극은 오해와 은폐와 복수와 절망이라는 어둡고 긴 여정을 거쳐 마지막 페이지에서 거대한 마침표를 찍게 되지만, 실은 훨씬 더 고통스러울 남은 날들을 위한 쉼표일 뿐 진짜 마침표는 아닙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족을 지키려던 자에게도,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분노를 복수로 어루만지려던 자에게도 해피엔딩이란 어울리지 않으며, 더 무겁고 가혹한 굴레가 기다리고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여정 속에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 페이스 스릴러도 포함되고, “누가? 왜? 어떻게?”라는 범인 찾기 미스터리도 끼어들지만, 그런 것들보다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심리 – 이기심, 분노, 복수심, 두려움, 욕망 등 – 에 좀더 관심을 두고 읽는다면 이 작품의 진짜 미덕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비극에 말려든 모든 인물은 6년 전 사건에 대해 각자만의 처지와 감정을 끌어안고 있지만, 그것들은 이야기 속 인물 그 누구에게든 쉽게 털어놓을 수도, 이해받거나 용서받을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당연히 그들의 괴로움과 고통은 독자를 향해 발산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독자는 이야기 못잖게 각각의 인물의 처지와 감정에 더욱 이입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다소 거친 면도 있고, 시비를 걸자고 작정하면 몇몇 흠결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면식범’은 그것들을 다 덮을 만큼의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을 보면 독자마다 평가가 엇갈리는 걸 알 수 있는데, 그중엔 단지 이 작품이 ‘한국산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이유만으로 편견 섞인 시선을 드러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준 이하의 작품들을 무더기로 쏟아내거나 잔인하기만 할뿐 온통 억지로 가득 찬 일부 외국 작품들에 비하면 ‘면식범’은 충분히 호평 받고도 남을 만한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출판사 홍보카피에 언급된 작가의 전작 ‘찾고 싶다’를 당장 읽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동시에 이 작가가 앞으로 잘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 역시 그에 못잖게 간절합니다. 지금은 톱클래스에 오른 도진기나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든 여러 신인들의 매력적인 데뷔작처럼 ‘면식범’ 역시 그만한 인상과 여운을 남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