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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평점 :
일본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올해(2021년) 꽤 눈여겨봤을 작가 중 한 명이 아시자와 요입니다. 이전까지 한국에 소개된 작품이 ‘아마리 종활 사진관’(2017년, 엘리) 단 한 편이었는데, “영정사진을 둘러싼 네 가족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연작 미스터리”라서 그런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무려 네 편의 작품을 한국에 출간하며 슬슬 화제성과 유명세에 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연작 괴담집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2월)을 시작으로 학교폭력과 복수의 문제를 다룬 ‘죄의 여백’(4월), 일상에 깃든 농도 짙은 공포를 소재로 한 단편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11월)까지 매번 색다른 장르와 소재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의 필력은 왜 이제야 그의 작품들이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작품보다 한 달 앞선 10월에 출간된 ‘나의 신’은 아직 못 읽었습니다.)
‘죄의 여백’(일본 출간 2012년)으로 데뷔한 이래 가장 최근작인 ‘神の悪手’(일본 출간 2021년 5월)에 이르기까지 모두 13편의 장단편을 출간했으니 1년에 한 편 이상씩 꾸준히 활동한 셈인데,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 8편이나 된다는 것도 잘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물론 덕분에 그만큼 아시자와 요와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는 기대감도 갖게 됐으니 어쩌면 다행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표제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를 비롯하여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장르와 소재 모두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라면 (그것이 사건이든 사고든)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서늘한 공포가 깃들어있다는 점과 주인공들의 ‘동기’에 대한 독자의 예측을 뒤집어버리는 매력적인 막판 반전입니다. 특히 뒤통수를 맞은 것 같지만 실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기분을 맛보게 만드는 독특한 반전은 (출판사 소개글대로) 단정하고 서늘한 아시자와 요의 필치 덕분에 더욱 큰 힘을 발산합니다.
18년 전 살인자가 된 외할머니의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사소한 실수를 덮기 위해 벌인 행동이 야기한 돌이킬 수 없는 파국(‘목격자는 없었다’), 9살 손녀에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강요해온 할머니가 마주한 예상 밖의 종말(‘고마워, 할머니’), 세 살 딸을 학대한 끝에 죽음으로 내몬 여자의 이야기(‘언니처럼’), 그리고 지옥도나 다름없는 그로테스크한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던 한 여류 화가의 비극(‘그림 속의 남자’) 등 모두 개성 강한 색채를 지녔지만 어딘가 하나의 실로 꿰어질 듯한 기묘한 이야기들이 수록돼있습니다.
형식 역시 다양해서 작은 단서에서 출발하여 진실을 찾아내는 미스터리도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 속의 공포를 다룬 작품도 있고, 그 외에 서술트릭이나 그로테스크 호러 등 말 그대로 팔색조 같은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단편집입니다.
대체로 장편을 선호하는 취향이지만 아시자와 요는 단편 혹은 연작단편을 제대로 맛깔나게 요리할 줄 아는 작가라서 앞으로도 그의 단편이라면 고민 없이 찾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올해 출간된 ‘나의 신’을 먼저 읽을 예정인데, 내년에도 아시자와 요의 작품들을 여러 편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