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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서울 광선주공아파트에 사는 네 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주부탐정단. 수개월 간 곳곳에서 출몰한 성추행범 쥐방울을 잡기 위해 결성됐지만, 아파트 쓰레기통에서 여성의 잘린 손목과 함께 2년 간 경기도에서 일어난 미제 연쇄살인사건(일명 스마일 맨 사건)의 상징이 발견되면서 주부탐정단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쥐방울의 범행이 대범해졌을 수도 있고, 연쇄살인마 스마일 맨이 활동 영역을 서울로 옮겼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부탐정단은 본격적으로 살인범 찾기에 나섭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탐정단의 막내가 한밤중에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단순가출로 치부하는 경찰에게 격분한 주부탐정단은 위험천만한 단독수사를 결심합니다.
“경찰들이 잘하는 것과 주부들이 잘하는 것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각기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그냥 지나쳤던 중요한 장면을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 (p113)
고백하자면 ‘할머니 탐정’, ‘학생 탐정’, ‘바리스타 탐정’, ‘어린이 탐정’ 등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사건 자체도 덜 독하고, 해법 역시 주인공 캐릭터에 맞춰 아마추어 냄새를 풍기거나 감동 코드가 강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맥주집 가나리야의 주방장 구도가 손님들의 미스터리한 사연을 듣는 단편집 ‘꽃 아래 봄에 죽기를’과 같은 예외가 있기도 합니다.) 2년 전에 출간된 ‘살롱 드 홈즈’를 외면해온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인데, 이 작품이 프랑스에 진출했다는 소식에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는 걸까, 라는 호기심에 뒤늦게 찾아보게 됐습니다.
네 명의 주부탐정단의 중심인물은 30대 후반의 주부 공미리입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탐정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그녀는 지금은 우울증에 걸린 초라한 중년이 됐지만 여전히 탐정에의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또래이자 세 자리 수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지닌 추경자, 장차 프랑스 풍 카페를 꿈꾸는 광선슈퍼의 주인 60대 전지현, 대학 중퇴 후 친정에 살며 아기를 키우는 싱글맘 박소희가 주부탐정단의 멤버로 가세합니다. 이들은 ‘주부들이 잘하는 것’의 힘을 발휘하며 작은 단서에서부터 차곡차곡 미스터리를 풀어나갑니다.
초반에 바바리맨 성추행범 쥐방울을 잡는 것이 목표일 때만 해도 “역시나...”라는 편견을 가졌던 게 사실인데, 범인이 화자인 챕터를 읽고 그녀들이 마주할 사건의 규모와 잔혹성을 깨달은 뒤론 어지간한 미스터리를 읽을 때처럼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는 “평범한 이들이 비범한 사건과 만나 아등바등하는 이야기”라고 소박하게 표현했지만, 주부탐정단이 마주한 사건은 잔혹한 소시오패스 살인극입니다. 언뜻 영화 ‘세븐’과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초반에 도쿄의 공원 쓰레기통에서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이 발견됩니다.)이 연상되는 연쇄살인은 치졸하고 무능한 남편들에게 무시당하고 사회의 주류에서 내쳐진 주부탐정단 멤버들에게 그저 ‘비범한 사건’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하고 끔찍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부탐정단이 유명한 주인공들처럼 빛나는 추리와 화려한 액션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주부의 눈에만 보이는 사소하지만 명확한 단서들을 포착해내고, ‘함께 있으면 든든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여자들만의 소속감과 유대감과 우정’을 통해 경찰 못잖은 협업을 이뤄내며, 순수한 분노의 에너지를 앞세워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아줌마 스타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론 주부 캐릭터 때문에 한계가 분명했던 건 사실입니다. 경찰이 놓친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긴 했지만 그건 주부탐정단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주인공들을 위해 태만하거나 모자라게 설정된 경찰 캐릭터 덕분입니다. 리더인 공미리의 추리는 분명 반짝반짝 빛나긴 했지만 (리얼리티 때문인지) 역시 아마추어 이상의 내공을 발휘하진 못했고, 잔인한데다 용의주도해 보인 범인이 다소 허술한 최후를 보인 점도 중반까지 잘 유지돼온 긴장감을 흐트러뜨린 요인입니다.
작은 규모의 광선주공아파트에서 또다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것 같진 않기에 이들의 활약을 다시 보기는 어렵겠지만 어쩌면 작가는 다른 동네를 설정해서라도 혹은 주인공 격인 공미리를 이사를 시켜서라도 제2의 주부탐정단을 조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에 인용한 문장처럼 ‘주부들이 잘하는 것’은 경찰 혹은 명탐정 미스터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설정이기에 실제로 제2의 주부탐정단이 결성된다면 두 팔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응원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