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집 안전가옥 오리지널 11
전건우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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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 나가는 그림동화 작가였던 유현민은 1년 전 불의의 사태로 인해 추락을 거듭하다가 결국 시골이나 다름없는 곳의 외딴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아내 명혜는 이사 첫날부터 느껴진 집의 한기가 심상치 않았고, 전에 살던 가족이 2년 전 갑자기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신경에 거슬립니다. 그러던 중 집안 곳곳에서 이상한 현상들까지 목격한 명혜는 악몽까지 꾸게 됐고, 끝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홀로 내던져지고 맙니다. 한편 현민은 어딘가 이상해진 아내 명혜와 3남매 때문에 걱정이 되는데, 어느 날 도저히 믿기 힘든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곤 과거 이 집에 살다가 사라졌다는 가족의 사연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 이 작품의 모티브는 귀신 들린 집에 사연 많은 가족이 이사를 왔다.”입니다. 사실 이 모티브 자체는 너무 많이 활용돼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작가는 흥미로운 컨셉으로 독자의 눈길을 끕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뒤틀린 집은 소위 전문가(?) 용어로는 오귀택(五鬼宅)이라고 하는데, “대문과 안방 등의 방향 배치가 뒤틀려 있어 그로 인해 생긴 틈 사이로 나쁜 기운이 흘러나와 온갖 귀신을 불러 모으고 산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집이란 뜻입니다. 애초 집 자체가 잘못 지어졌거나 방위(方位)의 문제일 수 있다는 뜻인데, 중요한 건 유현민의 가족이 이사 오기 전 이미 이 집은 귀신에게 장악당한 상태였고, 그들의 이사는 억눌려있던 귀신을 해방시킨 것은 물론 가공할 힘까지 부여하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익숙한 공식대로 흘러갑니다. 부부와 3남매는 제각각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거나 악몽을 꾸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귀신의 힘에 지배되기도 합니다. 집의 과거를 조사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2년 전 갑자기 사라진 일가족의 수상쩍은 사연이 공개됩니다. 하지만 좀더 상세한 정보를 얻으려고 할 때마다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마침내 드러난 진실은 너무나 잔혹했고,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한 가족들의 최후의 노력은 위험천만할 뿐입니다.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을 좋아하다 보니 뒤틀린 집역시 그런 스타일이 아닐까 무척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유현민의 가족이 정착한 집은 안팎으로 호러의 기운을 무지막지하게 내뿜는 공간으로 설정됐고, 가족들이 제각각 마주하는 초자연적 상황들은 오귀택, 귀신, 빙의, 악령, 학대와 폭력 등 웬만한 종류의 공포 코드를 모두 맛볼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거기에다 사라진 일가족의 미스터리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분량에 비해 볼륨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좀 더 많았던 게 사실인데, 가장 두드러진 건 가족이 가족답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삿날의 흥분, 이른 아침의 술래잡기 등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이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의 가족다운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각자 겪은 공포를 공유하지도 않고 서로를 지키겠다는 특별한 각오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작가가 가리키는대로 자신의 임무 - 연이어 기이한 현상을 겪는 일 - 만 열심히 수행할 뿐입니다.

집과 가족이 얽힌 호러라면 당연히 이 가족이 부디 살아남기를!”이란 바람을 독자에게 확실하게 심어놓아야 하는데, 가족이라기엔 애정도, 관심도, 연대도 느껴지지 않는 가운데 (귀신이 저지른 게 분명해 보이는) 초자연적 현상들과 피가 난무하는 사건들만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보니 오히려 공포의 맛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좀 심하게 말하면 이런 가족이라면 귀신에게 다 잡아먹혀도 별로 안타까울 것 같지는 않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호러 자체는 풍성했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족에게 걱정과 응원을 보내게 만드는 감정적 호소는 절대적으로 부족해보였습니다. 초자연적 현상 몇 가지를 줄여서라도 가족을 위해 약간의 분량을 할애했더라면 공포는 훨씬 더 고조되고 이야기 자체도 매력적으로 읽혔을 거란 아쉬움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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