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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유괴마 ㅣ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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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8월
평점 :
전대미문의 유괴사건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피해자는 모두 10대 소녀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자궁경부암 백신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부작용 피해를 입지 않은 소녀가 포함돼있었고 그녀가 백신 접종을 적극 권장해온 산부인과협회장의 딸로 밝혀져 수사진은 범인의 동기를 추정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또 유괴현장에서 발견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그림엽서의 의미를 알 수 없는데다 범인이 아무런 요구도 해오지 않아 수사진은 그저 무의미한 탐문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70억 엔이라는 거액을 요구하며 탐욕을 위해 위험천만한 백신 접종을 강요해온 후생노동성과 제약회사와 산부인과협회의 죄를 묻는 범인의 성명이 발표되자 일본 전역이 들끓기 시작합니다. 이누카이는 거듭된 실수와 오판 끝에 범인을 특정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하멜른의 유괴마’는 경시청 수사1과 형사 이누카이 하야토의 활약을 그린 세 번째 작품입니다. 2편인 ‘일곱 색의 독’은 올봄(2021년)에 출간돼서 나카야마 시치리의 팬들에게 익숙하지만, 1편인 ‘살인마 잭의 고백’은 2014년에 출간된 탓에 이누카이 하야토의 첫 등장을 접하지 못한 독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멜른의 유괴마’는 ‘뇌사자의 장기 기증’을 소재로 한 ‘살인마 잭의 고백’의 뒤를 잇는 사회파+메디컬 미스터리인데, 아마도 이누카이의 딸 사야카가 이식수술을 기다리는 만성 신부전증 환자로 설정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이누카이 하야토 시리즈’가 사회파+메디컬 미스터리의 길을 계속 걸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후속작 제목이 ‘닥터 데스의 유산’인 걸 보면 제 예상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독자의 관심을 끄는 건 이 작품의 소재인 자궁경부암 백신의 부작용입니다.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이 첨예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요즘 이 작품에서 다루는 백신의 부작용과 그 피해자들의 호소는 남의 일처럼 읽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가 본인의 딸이 자궁경부암 백신 부작용을 겪었던 탓에 조금은 거칠고 비판적인 태도로 글을 쓴 것 같은데, 사리사욕을 위해 부작용을 은폐하고 접종을 적극 권장한 후생노동성-제약회사-산부인과협회의 카르텔에 대한 작가의 비난은 다분히 감정적이긴 해도 충분히 독자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대목입니다.
주인공 이누카이 하야토는 독특한 재능을 지닌 인물입니다. 과거 연기학원을 다니며 상대방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거짓을 꿰뚫어보는 기술을 터득한 바 있는데, 그 기술 덕분에 현재 경시청 검거율 1,2위를 다툴 수 있게 됐지만, 문제는 이 기술이 남자에게만 통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이누카이가 수시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건 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납치된 건 소녀들이며 그밖에 피해자의 어머니들, 산부인과 의사 등 상대해야 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여자인 탓에 번번이 그들의 심리나 속내를 파악하지 못한 이누카이는 자신을 못 마땅히 여기는 후배 여형사 아스카에게 툭하면 한 방씩 얻어맞곤 합니다.
이누카이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황상 자궁경부암 백신 부작용이 사건의 발단인 건 분명해 보이지만 ‘백신 가해자’ 중 하나인 산부인과협회장의 딸까지 유괴된 점, 현장에서 발견된 의미를 알 수 없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그림엽서, 그리고 70억 엔이라는 거액을 요구한 범인의 동기 등 무엇 하나 분명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단서에서부터 출발한 이누카이는 날카로운 추리와 특유의 직감으로 범인을 추론하지만, 작가는 ‘반전의 제왕’답게 거듭된 반전을 통해 주인공 이누카이에게 수시로 좌절을 안깁니다. 마지막에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이누카이마저 크게 놀라는 대목은 주인공의 뒤통수마저 후려친 작가의 특별한 서비스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하멜른의 유괴마’에서 이누카이 못잖게 눈길을 끈 인물은 그의 파트너인 여형사 다카치호 아스카입니다. 25세인 그녀는 수사1과의 홍일점으로 본문에 따르면 “실력은 좋은데 어째서인지 이누카이를 싫어”합니다. 여자의 마음을 도통 이해 못하는 이누카이에게 따끔한 조언을 건네곤 하지만, 감정을 앞세운 채 ‘재판관’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스타일 때문에 이누카이와 자주 충돌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누카이에게 “앞뒤 분간 못하는 개를 어떻게 풀어놓겠어!”라는 험한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옮긴이의 말’에선 아스카가 이 작품에서 첫 선을 보였다고 설명하지만, 실은 그녀는 ‘작가 형사 부스지마’(2018, 북로드)를 통해 이미 한국 독자들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전직 형사이자 현직 미스터리 작가인 괴짜 인물 부스지마와 악연인 이누카이는 그의 조언을 얻어야 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초짜인 후배 아스카를 대신 보냅니다. 어리바리하던 아스카는 부스지마와의 협업을 거치면서 입도 거칠어지고 행동도 대담해지는데, 어쩌면 그 일 때문에 이누카이를 미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성 강한 여러 주인공들을 창조하고 다양한 소재를 구사해온 나카야마 시치리가 다음엔 어떤 주인공과 어떤 소재를 들고 독자를 찾아올지 사뭇 기대가 되고 궁금해집니다. 개인적으론 ‘비웃는 숙녀 시리즈’가 가장 기다려지는데, 이누카이-아스카 콤비의 활약 역시 그에 못잖게 얼른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작품이 됐든 늘 재미 면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후속작 소식이 빨리 들려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