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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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들1994년에 발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입니다. 그의 작품 리스트의 기점이 1985년에 출간된 방과 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초기작이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본격적으로 성숙한 작품들을 내놓기 직전, 그러니까 중견으로의 진입 시점에 발표된 작품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가가 형사 시리즈초기작이라든가 숙명등 매력적인 작품들을 내놓긴 했습니다.)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야기의 톤이나 중량감만 따지면 일상 미스터리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동원된 사건들은 살인, 강도, 절도 등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건은 지독한 악의나 소시오패스의 광기와는 거리가 먼, 다소 우발적이거나 착각 또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또 대단한 반전이나 정교한 미스터리 트릭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내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법한 현실적인 사건들로 읽혔습니다.

 

동료들에게 돈을 받고 자신의 집을 밀회의 장소로 제공해온 남자가 어느 날 아침 낯선 여자와 마주친 뒤 겪는 미스터리(자고 있던 여자),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한 남자에 대한 오랜 원한(판정 콜을 다시 한 번!), 성실함과 근면함의 두 얼굴을 그린 직장 미스터리(죽으면 일도 못해), 신혼여행 첫날밤에 벌어지는 비극적인 복수(달콤해야 하는데), 결혼 사실을 알려온 친구의 편지에 담긴 낯선 여자의 사진의 비밀(결혼 보고) 등 수록작 모두 독특한 설정의 미스터리를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수록작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소소한 악의가 예상 밖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에피소드를 그린 등대에서였습니다.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두 주인공의 캐릭터도 흥미로웠고, 반전의 힘도 꽤 강렬했으며, 단편만이 발휘할 수 있는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중에는 좀더 사건성이 강한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편이지만, 일상 미스터리와 삶의 아이러니를 담담하게 그린 수상한 사람들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개성을 맛볼 수 있는 괜찮은 단편집이라는 생각입니다. 독하고 강한 양념에 익숙해진 독자에겐 30년 가까이 된 다소 쉽고 가벼워 보이는 미스터리가 무덤덤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매력과 미덕이 있는 작품집이니 오후 한나절쯤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지고 싶다면 수상한 사람들도 좋은 선택이 돼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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