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총이 빠르다 - 마이크 해머 시리즈 2 밀리언셀러 클럽 31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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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일을 마치고 심야식당에서 빨간 머리의 매춘부를 만난 마이크 해머는 잠깐의 대화를 통해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곤 진심을 담아 새 삶을 권유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그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해머는 이름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 그녀 주변을 조사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며, 그녀가 지닌 뭔가를 쫓는 자들이 있음을 눈치 챕니다. 작은 단서에서부터 출발하여 차근차근 그녀의 과거를 훑어가던 해머는 숱한 위기를 넘긴 끝에 그녀의 죽음의 배후에 매춘조직과 권력층 간의 부패한 커넥션이 있다는 걸 확신합니다. 절친인 뉴욕 강력계 반장 팻 체임버스와 공조 수사를 벌이긴 하지만 해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채 의도적으로 경찰을 배제하곤 악당들을 향해 거침없이 45구경 권총을 발사합니다.

 

내 총이 빠르다법보다 주먹을! 재판보다 직접 처단!”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난폭한 정의의 탐정 마이크 해머의 두 번째 활약을 그린 작품입니다. 뒤표지 카피에 의하면 하드보일드의 살아있는 신화로 이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에 대한 정의가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차갑고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을 기술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실은 이 시리즈의 주인공 마이크 해머는 오히려 하드보일드의 전설인 필립 말로와는 상당히 대척점에 서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미키 스플레인의 문장 역시 대체로 차갑고 건조하긴 해도 결정적인 순간, 즉 해머가 폭발하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온갖 분노의 감정을 총동원하여 격하기 이를 데 없는 폭주를 감행하는데, 그러고 보면 작가나 주인공 모두 필립 말로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하드보일드를 구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리즈 첫 편인 내가 심판한다의 원제가 ‘I, The Jury’, 내가 심판이고 배심원이고 판사.”라는 노골적인 선언을 담고 있듯 해머는 자신이 한 번 꽂힌 사건에 관한 한 일부러 경찰을 따돌려가면서까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겉모습은 매춘부였지만 숙녀의 우아함을 지녔던 빨간 머리 여자의 죽음에 분노한 해머는 상대해야 할 적이 거대하고 부패한 권력층과 매춘조직의 커넥션이란 걸 깨달은 뒤로 필요에 따라 뉴욕 경찰의 강력계 반장인 팻 체임버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난폭한 영웅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340여 페이지 내내 그만의 심판을 거침없이 휘두릅니다.

 

해머의 첫 번째 미덕은 45구경 권총으로 대변되는 그의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대응이지만, 그는 유능한 사립탐정답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상당한 추리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사소한 단서조차 절대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집중력도 대단합니다. 동시에 한 작품 안에서 숱한 여성들과 농도 짙은 로맨스를 펼치는 마초적인 기질도 어김없이 발산하는데, 이 시리즈가 1947년에 시작되어 1950년대에 전성기를 맞은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작인 내가 심판이다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복수심과 함께 부패를 향한 공적인 분노와 정의감이 뒤섞여 있는 내 총이 빠르다(로맨스 장면을 제외하곤) 거의 쉴 틈 없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처럼 전개되는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입니다. 한순간도 눈을 떼기 힘든 매력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간혹 중요한 대목에서 애매모호한 문장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지?”라는 의아함을 자아낼 때가 있습니다. 원작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점을 제외하곤 흥분지수를 고도로 유지할 수 있는 오락물의 힘을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을 무대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마이크 해머는 지금 당장 드라마로 만들어도 똘끼 충만한 매력적인 탐정으로 각광받을 수 있는 인물입니다. 모두 13편의 작품이 출간됐지만 한국에는 초기 세 편만 소개되고 말았는데, 언젠가 레트로 열풍이 분다면 다시 한 번 재조명될 수 있는 명품 캐릭터가 돼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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