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거명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7 미치 랩 시리즈 6
빈스 플린 지음, 이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최고의 인간병기이자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무자비한 대테러 요원 미치 랩.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를 제거하고 싶은 적들도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 랩에게 아들을 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재벌이 현상금을 내걸고 랩의 목숨을 거두기로 결심한다. 후폭풍을 감안했을 때 절대 실패해선 안 될 미치 랩 암살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가공할 수준의 최고급 킬러 커플이 암살 실행자로 낙점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이 작품 속 미치 랩의 나이는 37살입니다. 20대 초반부터 활약해온 그에게 목숨을 잃은 테러리스트는 그야말로 부지기수입니다. 애초 철저한 비밀요원이었던 랩은 탐욕스러운 정치인의 농간으로 인해 그 신분이 폭로됐고, 그 순간부터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사냥감이자 반드시 제거해야 할 복수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바깥의 적들 못잖게 랩을 못 마땅히 여기는 내부의 적들까지 준동하는 탓에 랩의 상황이 더할 나위 없이 최악에 이른다는 점입니다. ‘제거명령은 자신을 암살 혹은 제거하려는 안팎의 적들을 향한 랩의 투쟁이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치열하고 비장하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사실 제거명령은 서평을 쓰기가 참 난감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랩이 목숨을 잃을 일은 없으며 결국 암살을 모의한 자들을 향한 랩의 복수가 주된 이야기란 점을 누구나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데, 문제는 암살 시도복수사이에 벌어진 이 작품의 가장 큰 사건이 워낙 대형 스포일러라서 서평에서 절대 언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랩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사우디 왕자와 재벌의 모의로 시작된 랩 암살 계획은 구 동독 스파이 출신인 정보원의 중개를 거쳐 최고의 실력을 갖춘 프랑스 킬러 커플에게 전달됩니다. 한편 모든 미국 정보기관의 옥상옥이나 마찬가지인 국가정보원이 신설되고 정치적 야욕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 그 수장에 오르면서 랩과 그의 상관인 CIA국장 케네디는 불편함을 넘어 위기감까지 느낍니다. 수장이란 자의 눈에는 온통 비밀투성이인 랩과 CIA의 행태가 반드시 꺾지 않으면 안 될 위험천만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에선 암살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또 다른 한편에선 랩과 CIA를 뭉개놓으려는 정치적 공격이 노골적으로 전개되다 보니 초중반까지는 랩의 존재감이 그리 강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아내 애너 릴리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뿐입니다. 그 지점까지 독자의 눈길을 끄는 건 암살의 주체들이 주고받는 살벌한 협상과 거래 장면들입니다. 실패할 경우 랩의 처절한 복수가 자명한 터라 모의자-중개인-실행자 모두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암살계획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암살자들에 대한 랩의 복수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이야기는 시리즈 그 어느 작품보다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며 피도 눈물도 없는 랩의 복수극을 그립니다. 최초로 암살을 모의한 자부터 중개인은 물론 실행자들을 쫓는 랩의 복수극엔 미국과 유럽과 중동에 자리 한 랩의 오랜 아군들이 총출동하는데, 단순한 무력만이 아니라 랩이 짠 치밀하고 정교한 계획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면서 수시로 독자의 감탄을 자아내곤 합니다.

정말 의외였던 것은 마지막 복수 장면에서 갑작스레 눈가가 뜨끈해진 일입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지만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복수극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랩이 느끼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회한은 말 그대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미묘하고 복잡한 모양새를 띠기 때문입니다.

 

(아직 시리즈 7편인 반역행위를 못 읽었지만) ‘미치 랩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은 독자라면 아마도 제거명령을 시리즈 최고 작품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거란 생각입니다. 암살 혹은 제거의 타깃이 된 랩이 아군들과 함께 안팎의 적을 무자비하게 응징한다는 스토리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심신이 엉망진창이 된 채 출구 없는 무간지옥을 견뎌내야 하는 랩의 고통이 너무나도 절절하고 안타깝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출간된 시리즈 7반역행위역시 그 제목만으로도 랩이 겪을 새로운 위기의 무게감이 육중하게 느껴지는데, 과연 이 작품에서 밑바닥 없는 심연에 빠진 랩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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