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형사들 - 사라진 기와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명섭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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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할머니 영빈마마의 위패를 모신 의열궁의 기와 수십 장이 사라지는 변고가 일어납니다. 좌우포도대장은 평소 맹렬한 견원지간이지만 왕의 불벼락이 더 두려운 탓에 협력수사를 결심하곤 각각 군관 한 명씩을 추천하여 비밀수사를 맡깁니다. 바로 좌포청의 쇠도리깨이종원과 우포청의 육모방망이육중창이 그들입니다. 정반대의 성격과 외모를 지닌 그들은 의열궁 기와 사건은 물론 백주대낮에 발견된 20대 여성 시신 사건까지 맡게 됩니다.

 

사극 혹은 시대극 미스터리는 현대물과는 사뭇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CCTVDNA 감식기술도 없이 오로지 물증과 목격자와 탐문에 의존해야 하다 보니 눈높이가 한없이 높아진 요즘 독자들에게는 다소 유치하거나 어리숙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만 바로 그 점이 사극 혹은 시대극 미스터리의 매력인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조선의 형사들은 팩션, 즉 실존했던 인물들과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입니다. 관할권과 포상을 두고 서로 으르렁대던 좌우포청에서 차출된 명콤비 이종원과 육중창은 추안급국안(조선 후기 중죄인의 공초를 기록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며, 그 외에 형조참의 정약용과 정조 등도 가세하여 팩션의 맛을 더 깊게 만들어줍니다.

 

크게 두 개의 사건 의열궁의 사라진 기와, 20대 여인의 변사 사건 이 등장하는데, 전자의 경우 궁궐에서 사용하는 기와를 훔쳐간 범인의 동기를 파악하기 힘든는 난제였고, 후자는 일찌감치 범인을 특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권력자들의 농간이 이종원과 육중창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등장합니다. ‘20대 여인 변사 사건이 물증과 단서, 탐문과 자백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탐정 미스터리라면 사라진 기와 사건은 좀더 큰 규모의 궁중 액션사극의 풍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형조참의인 정약용과 정조가 카메오 이상의 역할로 두 사건에 모두 개입하면서 이종원과 육중창은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맹활약할 수 있는 기반을 얻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두 주인공 이종원과 육중창의 콤비 플레이가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는데, 체구나 성격 모두 정반대인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합을 맞춰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캐릭터 플레이를 볼 수 없었던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상대적으로 사건이 너무 빠른 속도로 전개되다 보니 둘만의 케미라든가 각각의 개인사, 그리고 크고 작은 갈등이 언급될 틈 자체가 없었던 탓인데 어쩌면 후속편을 염두에 둔 작가의 포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정약용과의 협업 과정을 보면 아무래도 이종원과 육중창의 활약이 이 한 편으로 끝날 것 같진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더 언급하면, 사극 미스터리의 어쩔 수 없는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힌 작품이지만 전반적으로 가볍다는 인상을 받은 점도 아쉬웠는데, 기름기 하나 없이 살코기로만 이뤄진 듯한 이야기는 긴장감과 속도감은 뛰어날지 몰라도 묵직함을 만끽하기엔 다소 부족해 보인 게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주인공도, 악당도, 조연들도 딱 자기가 할 말과 역할만 하고 있었고 사건을 둘러싼 분위기나 정황 묘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할까요?

 

추안급국안에 이종원과 육중창의 활약이 더 남아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없더라도 픽션을 통해 그들의 다음 활약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높아진 눈높이와는 별개로 사극 혹은 시대극 미스터리만의 매력은 특별한 간식 같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두 주인공의 개인사도 무척 궁금한데 후속편이 나온다면 그 부분도 상세히 그려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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