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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추하다 당신의 친구
사와무라 이치 지음, 오민혜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뛰어난 미모와 카리스마로 요쓰카도 고교 3학년 2반을 좌지우지하던 하무라가 갑작스레 자살하자 교사와 학생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문제는 2반의 미모의 여학생들에게 연이어 끔찍한 변괴가 일어났다는 점. 부임한지 얼마 안 된 담임 마이카는 선배 교사로부터 2반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요쓰카도 고교의 오랜 괴담과 연관 있다는 얘기를 듣곤 공포에 휩싸입니다. 31년 전 극도로 추한 얼굴의 여학생 레미가 자살한 뒤로 몇 년에 한 번씩 여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괴담에 따르면 레미는 증오하는 여학생을 추하게 바꿔 버릴 수 있는 주술이 담긴 책을 남겼으며, 30여 년간 학교에서 벌어진 연이은 자살은 레미의 책을 물려받은 추한 외모의 여학생들이 주술을 부린 결과란 것입니다. 담임 마이카를 비롯 일부 여학생들은 주술을 부리는 범인을 찾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로 인해 끔찍한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보기왕이 온다’, ‘즈우노메 인형’ 등 독특한 호러물 ‘히가 자매 시리즈’를 내놓았던 사와무라 이치가 이번에는 호러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학원물로 독자를 찾았습니다. 상대의 외모를 바꿔버릴 수 있는 주술, 그 주술을 부리는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그리고 외모지상주의와 교실 내 계급이라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총출동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당사자들인 2반 학생들과 담임 마이카의 상황이 메인 스토리로 그려지는 가운데 누군지 짐작하기 힘든 범인의 1인칭 챕터가 번갈아 전개됩니다. 범인의 챕터를 통해 31년 전 자살한 레미가 남긴 주술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상세히 설명되는데 그야말로 사와무라 이치다운 독특하고 기괴한 도시전설의 풍미가 가득 배어있습니다.
주술이 깃든 호러와 후더닛 미스터리가 독자의 관심을 끄는 대목인 건 사실이지만, 이야기의 밑바탕을 이루는 외모지상주의와 교실 내 계급의 문제가 가혹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져 있어서 ‘상대의 외모를 바꿀 수 있는 비현실적인 주술’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외모와 부모의 재력을 기준으로 그어진 경계선은 카스트에 가까운 계급사회를 구축했고, 남학생들은 물론 교사들까지 나서서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여학생들의 평점을 매기는 상황은 사악한 주술을 부리는 범인을 오히려 응원하게 만드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자칫 평면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이야기지만 후반부의 급반전 덕분에 진범의 정체도, 범행수법도, 그리고 결코 손가락질 할 수 없는 범행동기도 무척 깊고 묵직한 여운과 함께 독자 앞에 공개됩니다. 한 사람의 외모가 호불호라는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선 안 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현실은 그 당연함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론 오래 전에 본 애니메이션 ‘슈렉’의 마지막 반전이 훅 떠올랐는데, 그 반전 때문에 무척 부끄러웠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외모를 ‘평가’의 잣대로 여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호러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매력만큼이나 외모에 관한 작가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옮긴이의 말’에 실린 “언뜻 보면 괴담이 공포의 실체인 것 같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외모지상주의와 교실 내 계급이라는) 현실이 곧 공포임을 알게 된다.”에 100% 공감할 수 있는 건 비단 저만의 경험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사와무라 이치의 호러물을 아주 좋아한다고 할 순 없지만 독특한 설정과 전개 때문에 계속 관심을 갖고 읽어왔는데, ‘아름답다 추하다 당신의 친구’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처럼 호러와 미스터리가 잘 배합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 나온다면 두 손 들어 환영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