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몰자의 날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6 미치 랩 시리즈 5
빈스 플린 지음, 이영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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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테러 부문 수석보좌관 미치 랩과 CIA국장 아이린 케네디는 각각 미국에 대한 심상치 않은 테러 조짐을 감지합니다. 비밀리에 특수부대와 함께 파키스탄 국경지대로 날아간 랩은 알카에다 핵심들의 회의 장소에서 워싱턴을 통째로 날려 보낼 끔찍한 핵폭탄 공격 계획을 발견합니다. 랩의 정보는 워싱턴을 발칵 뒤집어놓지만 문제는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며 랩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입니다. 재선을 앞두고 9.11 이후 제정됐던 강력한 테러대책법을 완화하려는 대통령, 혼란을 야기할 안이한 대책만 내놓는 장관들, 백악관의 정치적 타격만 걱정하는 수석보좌관 등을 지켜보며 랩의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던 CIA 특수부대 암살자 미치 랩은 야비한 정치꾼들로 인해 그 신분이 노출된 이후 이른바 대테러 부문 수석보좌관이라는 사무직을 맡게 됐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 직접 일을 해치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선 현장요원이나 다름없는 맹활약을 펼치며 미국에 대한 핵폭탄 테러를 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랩은 잔혹한 현실에 대해 1도 모르면서 그저 이해타산적인 정치술수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워싱턴 관료들의 작태에 격분합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그는 예전과는 급이 다른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만 하는 장관이나 보좌관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물론 언제나 끝까지 자신을 믿어줬던 대통령마저 재선에 눈이 멀어 제대로 된 판단을 못 내리자 랩은 넘어선 안 될 선마저 넘어서며 거친 공격을 퍼붓습니다. 핵폭탄이라는 미증유의 테러가 코앞에 닥친 상태에서 결국 랩은 모든 절차와 규약을 무시한 채 고문과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도 마다하지 않기로 작심합니다.

 

나쁜 이슬람을 응징하는 미국식 영웅 만들기라는 프레임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의 안이한 행태를 지켜보고 있으면 랩의 참을 수 없는 격분과 극단적인 행태에 100%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현장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동안 백악관은 재선 전략에만 몰두하거나 외국정상들까지 참석한 화려한 연회를 즐깁니다. 분초를 다투는 싸움을 두고 절차와 허가를 운운하며 권위만 앞세우거나 오히려 독이 되는 무모한 대안만 강요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증오심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랩은 기어이 폭발하고 맙니다. 덕분에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암살자로서의 랩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산되는데, 그 매력은 핵폭탄 테러라는 엄청난 사태와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그야말로 절정에 이릅니다.

 

정치색이라곤 조금도 없는 랩이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문과 살인을 자행하는 모습에선 다소 극단적인 신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핵폭탄을 터뜨리기 위해 미국에 잠입한 테러리스트를 두 번째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신념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애쓰며 나름의 균형 잡힌 서사를 전개시킵니다. 물론 다소 맹목적이고 과격하며 적개심으로 가득 찬 위험천만한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랩은 단독 주인공으로서의 비중이 좀 부족한 편입니다. 초중반까지는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작전을 펼치느라 정작 워싱턴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에는 끼어들지 못합니다. 또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FBI 특수수사관 스킵 맥마흔, 에너지국 핵 비상지원팀의 폴 라이머, CIA 최고의 심문관 바비 아크람 등 카리스마 넘치는 조연들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원톱으로서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들과의 협업을 이끌어가는 랩을 지켜보는 일 역시 색다른 흥미를 전해줍니다.

다음 작품에도 등장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야심찬 30대 법무부 부차관보 페기 스텔리가 눈길을 끌었는데, 핵폭탄 문제를 놓고 랩과 크게 충돌하면서도 그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느끼는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랩이 유부남인 것 따윈 상관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 다음 작품에서 어떤 사고를 칠지 기대감이 만발하는 캐릭터입니다. (상대적으로 랩의 발목만 잡던 아내 애너가 거의 등장하지 않은 점은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전몰자의 날미치 랩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한국에는 모두 일곱 편이 출간됐으니 이제 읽을 작품이 두 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작품들이 출간되지 않은 게 그저 아쉬울 수밖에 없는데 언제라도 좋으니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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