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죽지못한 파랑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교실에서 빚어진 사소한 오해와 담임선생의 악의에 찬 행동이 평범한 초등학교 5학년생 마사오의 세계를 서서히 일그러뜨리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그를 무시하고 담임선생의 노골적인 차별은 점점 더 심해져 마사오는 결국 최하층 계급으로 전락한다. 친숙했던 교실이 지옥으로 변해가던 어느 날, 마사오 앞에 괴물의 형상을 한 소년 아오’()가 나타난다. 섬뜩한 구속복을 입은 채 흉측한 흉터와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새파란 피부를 지닌 아오는 그날 이후 마사오의 분노가 극에 달할 때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책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마사오에게 위험천만한 속삭임을 건네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미처 죽지 못한 파랑은 여러 면에서 오츠이치가 17(1996)에 발표한 데뷔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치정에 얽힌 살인과 엽기적인 시체 유기가 난무하지만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들이 9살에서 11살 사이의 소년소녀라는 점은 과연 오츠이치의 데뷔작답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설정이었는데, ‘미처 죽지 못한 파랑역시 왕따와 폭력, 호러와 복수 등 결코 낮지 않은 수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생인 마사오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일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1년에 발표된 오츠이치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작품연표를 살펴보면 암흑동화고스(GOTH)’ 사이쯤 위치합니다.

 

역자후기에는 그렇게 괴로운 경험을 하게 될 때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힘을 내야만 한다는 것.”이 작가의 메시지라고 설명돼있는데, 큰 얼개만 보면 이런 착한 해석이 정답일 수도 있고 오츠이치의 의도 역시 그런 방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론 좀 다른 의견, 후천적 소시오패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오츠이치 식 호러풍으로 그린 작품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해 보입니다.

평범한 소년 마사오가 담임선생과 친구들에 의해 최하층 계급으로 추락하는 과정이라든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파란 피부의 소년 아오가 마사오의 의식과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며 분노와 살의를 북돋는 과정, 그리고 마사오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결심등은 말 그대로 후천적인 소시오패스의 성장기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오츠이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작가후기를 읽어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미스터리 같은 결말도,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라스트도 감안하지 않고 진짜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썼다.”고 고백했는데, 달리 말하자면 오픈된 결말이니 어떤 해석도 가능한 자유로운 텍스트.”라는 고백으로 볼 수도 있어서 그야말로 독자마다 다양하고 색다른 평가의 여지가 많은 작품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칫 판에 박힌 교훈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소재를 이처럼 극단적인 해석이 가능하게끔 그려낸 건 오롯이 오츠이치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덕분인데, 개인적인 취향만 따지고 본다면 오츠이치가 이 작품의 엔딩을 데뷔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처럼 충격적으로 마무리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츠이치 특유의 천진난만한 문장 속에 깃든 극도의 공포와 호러풍 판타지의 매력은 충분히 만끽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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