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 아더 미세스 - 정유정 작가 강력 추천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7월
평점 :
남편 윌의 외도, 아들 오토의 퇴학, 응급의학과 의사였던 자신의 의료사고 등 한꺼번에 터진 인생 최악의 사건들 때문에 궁지에 몰렸던 세이디는 남편 윌의 제안에 따라 자살한 시누이 앨리스가 남긴 메인 주의 외딴 섬의 낡은 저택으로 이사합니다. 섬 특유의 배타적 분위기에 낡은 저택이 내뿜는 불온한 기운까지 더해져 세이디의 절망감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살던 여자가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문제는 현지 경찰이 세이디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죽은 옛 연인의 사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남편, 전학 후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아들, 대놓고 악의를 발산하는 시누이의 딸 등 사방에서 날을 세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세이디는 살인용의자로 몰리는 처지에 이르자 스스로 범인을 찾을 결심을 합니다.
이야기는 세 여자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외딴 섬에서 온갖 스트레스와 절망을 겪던 세이디가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뒤 직접 범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가 중심을 차지합니다. 이어 세이디의 남편 윌에게 집착하며 불륜 관계를 맺고 있는 카밀의 이야기가 간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6살 소녀 마우스가 새 엄마에게 학대당하는 끔찍한 상황이 막간극처럼 소개됩니다.
음습한 늦가을의 외딴 섬, 남편의 외도, 스토커에 가까운 불륜녀, 잔혹하게 난자당한 피살자, 살의를 내뿜는 시누이의 딸 등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스릴러의 요소들을 골고루 갖춘 작품이지만 ‘디 아더 미세스’는 극단적인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끈적끈적한 심리스릴러입니다. 가족이나 일터의 동료는 물론 외딴 섬의 불온한 기운과 시누이가 자살한 낡은 저택의 공포까지 감당해야 하는 세이디의 심리가 집요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그려집니다. 또 언제라도 세이디를 공격할 것만 같은 불륜녀 카밀의 들끓는 욕망은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긴장감을 맛보게 만듭니다.
이웃의 여자가 칼로 난자당한 채 살해된 사건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이자 불안정한 상황의 세이디를 막다른 벽에 몰아넣는 카운터펀치인데, 세이디의 주변 인물 중 누가 범인으로 밝혀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미묘하게 전개됩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두 가지 정도 아쉬움이 남은 작품입니다. (대형 스포일러라서 자세한 언급은 못 하지만) 우선 이 작품은 막판에 두 번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중 첫 반전이 저의 취향과 맞지 않았는데, 실은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중반쯤부터 슬슬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작가가 꽤 많은 힌트를 줘서 그 반전이 폭로됐을 때 딱히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궁금했던 건 작가의 의도였습니다. 독자가 눈치 채길 바라고 일부러 그 많은 힌트들을 준 건지, 아니면 독자들이 그 힌트들을 몰라보곤 막판 반전에 놀라기를 바란 건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앞서 제공된 힌트들을 전복시키는 신선한 반전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가 “역시 그렇군...”이란 아쉬움만 남고 말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번째 반전’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유사한 설정으로 실망감만 남긴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이 ‘두 번째 반전’은 ‘디 아더 미세스’만의 고유한 매력이라는 생각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분량’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또 동어반복처럼 그려진 세이디의 공포와 절망에 대한 묘사는 심리스릴러 마니아가 아니라면 다소 지루하고 느슨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인데, 살인사건 미스터리가 병행되긴 했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심리스릴러는 아무래도 좀 무리였다는 생각입니다.
메리 쿠비카는 ‘디 아더 미세스’로 처음 만난 작가인데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필력을 확인할 수 있어서 한국에 먼저 소개된 그녀의 작품 ‘굿 걸’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심리스릴러는 제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는 장르지만 페이지터너의 힘을 갖춘 작가라면 기꺼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