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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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란 사람과 생명과 돈을 닥치는대로 삼켜버리는 거대한 괴물이다. 법은 진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타협과 개량과 조작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나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만 나는 다만 교활한 천사일뿐이다.” (p35~36)

 

유죄냐 무죄냐에 관계없이 오로지 의뢰인의 혐의를 벗기거나 거래를 통해 형을 감량하거나 심지어 경찰과 검찰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사건 자체를 무너뜨리는 걸 최고의 목표로 삼는 변호사 미키 할러의 일성은 거의 궤변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사법체계의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꼬집은 비판이기도 하고, 부끄러움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하고 솔직한 자기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무실도 없이 자신이 아끼는 링컨 타운 카에서 업무를 보는 미키의 주된 고객은 돈이 되는 의뢰를 들고 오는 마약상, 폭주족, 사기꾼 등 뒷골목의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미키는 언제라도 자신의 삶의 수준을 뒤바꿔놓을 대박 의뢰인을 고대하기도 합니다. 유능하지만 그야말로 속물 변호사의 모든 미덕을 다 갖춘 인물이란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직 검사로 정의와 페어플레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매기 맥피어스(또는 마가렛 맥퍼슨)와의 결혼생활이 8년이나 이어졌던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가르침 가운데 미키가 절대 공감하는 한 가지는 변호사에게 가장 끔직한 의뢰인은 무고한 사람!”이란 점입니다. 의뢰인의 무고함을 깨닫는 순간 무죄판결을 이끌어내는 것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만일 무죄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감당해야 할 죄책감 역시 불편하고 기분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런 미키 앞에 고민덩어리 의뢰인이 나타납니다. 처음엔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박 의뢰인이라 반가웠지만, 알고 보니 가장 끔찍한 무고한 의뢰인이었고, 좀더 파고들어 보니 가장 악랄한 의뢰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미키는 법정에선 검사와 싸우며 의뢰인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지만, 법정 밖에선 의뢰인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파헤치면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아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합니다. 그런 와중에 소중한 동료를 잃기도 하고, 스스로 살해 위기에도 빠지는가 하면, 전처인 매기와 8살 딸 헤일리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하는 궁지에 몰립니다. 법정 스릴러와 범죄 스릴러가 절묘하게 믹스된 속물 변호사의 이야기는 막판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채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광팬이라 해리 보슈 시리즈와 스탠드얼론에 열광하는 1인이지만, ‘미키 할러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정도의 관심에 그친 게 사실인데, 앞서 읽은 시리즈 3~5(‘파기환송’, ‘다섯번째 증인’, ‘배심원단’)과 마찬가지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역시 마이클 코넬리 특유의 재미와 매력이 덜 느껴진 작품이었습니다. 시리즈 첫 편이다 보니 미키 할러의 캐릭터나 배경 설명에 많은 분량이 할애되기도 했고, 사건은 다소 밋밋하게 전개된 데다 법정 공방은 느슨하거나 지루했고 막판 반전의 맛과 충격도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메인 사건의 피고인이자 미키를 위기에 빠뜨리는 대박+무고+악랄 의뢰인의 캐릭터와 그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낼 만한 파괴력을 지니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그런 탓에 클라이맥스와 엔딩의 힘이 훅 빠져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 출간된 미키 할러 시리즈가운데 2편인 탄환의 심판만 못 읽은 셈인데, 이왕 첫 편을 읽었으니 조만간 탄환의 심판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순서대로 다시 읽기에 도전하는 차원에서 이미 읽은 3~5편도 다시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번 이런저런 아쉬움을 겪긴 했어도 미키 할러의 새 작품이 나오면 절대 외면하진 못할 것 같은데, 그건 미키 할러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이클 코넬리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억측에 가깝지만, 어쩌면 정의감과 비극성을 겸비한 해리 보슈에게 익숙해진 탓에 같은 작가의 히어로지만 정반대 성격을 가진 미키 할러에게 깊은 정(?)을 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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