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20년을 별러온 성대한 마흔 살 생일파티를 얼마 안 남겨놓고 리비아는 가족을 파멸에 이르게 만들 딸 마니의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파티 당일, 리비아의 남편 애덤은 딸 마니에 관한 믿기 힘든 소식을 접합니다. 리비아와 애덤은 인생 최고의 행복한 순간을 코앞에 두고 딜레마에 빠집니다. 당장이라도 파티를 중단시키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충격적인 비밀과 믿기 힘든 소식을 상대에게 알려야 할지, 아니면 파국이 닥치기 전 다만 몇 시간만이라도 20년을 기다려온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게 배려해야 할지... 파티는 성대하게 진행되지만 정작 그 주인공인 리비아와 애덤은 바닥 모를 심연에 빠진 채 공포와 절망의 시간을 보냅니다.

 

나를 찾아줘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진 가족 심리스릴러가운데 별 5개를 줄 만큼 만족스런 작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피로도만 높아졌고 그래선지 의식적으로 외면해온 게 사실인데, 그런 와중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B. A. 패리스의 작품들은 빼놓지 않고 계속 읽게 됐습니다. ‘비하인드 도어’, ‘브레이크 다운’, ‘브링 미 백에 이은 그녀의 네 번째 작품 딜레마는 전작들에 비하면 외형적으론 무척 왜소한 소재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심리스릴러로서의 무게감과 긴장감 면에서는 훨씬 더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10대 시절의 임신과 결혼, 결코 순탄치 않았던 결혼 초기의 상황, 겉으론 평온해보여도 미묘한 갈등이 상존해온 부모자식간의 관계 등 리비아 부부의 과거와 현재가 담담하면서도 살얼음마냥 위태롭게 묘사됩니다. 다사다난한 20년을 보낸 리비아 부부는 이제는 제법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됐고, 덕분에 부모에게 의절당하고 제대로 된 결혼식마저 올리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긴 리비아가 20년을 별러온 성대한 마흔 살 파티도 행복한 기분으로 준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딸 마니에 관한 충격적인 비밀과 믿기 힘든 소식이 파티를 앞둔 리비아 부부를 공포와 절망에 빠뜨렸고, 두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파티를 중지시키지 않았지만, 노래와 춤과 웃음이 사라지고 난 새벽녘, 결국 끔찍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언뜻 보면 왜 두 사람은 딸에 관한 그렇게 중요한 비밀과 소식을 상대에게 빨리 알리지 않는 거지? 마흔 살 생일파티가 그보다 중요한가? 이런 상황이 가족 심리스릴러에 적합한 소재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부부의 내밀한 심리를 설득력있게 묘사하면서 파티 당일부터 다음날 새벽까지의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찬 24시간을 디테일하게 그려냅니다. 덕분에 단지 몇 시간의 유예를 얻었을 뿐인 모두를 파멸로 이끌고 갈 엄청난 충격이 과연 파티가 끝난 뒤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 독자 입장에선 초조하게 마음 졸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건이라곤 리비아 부부가 알게 된 딸 마니에 관해 충격적인 비밀과 믿기 힘든 소식이 전부지만, 끔찍한 살인사건이나 정교한 미스터리보다 훨씬 더 높은 밀도와 팽팽한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근본적인 의문 왜 서로에게 딸의 비밀과 소식을 빨리 알리지 않는 거지? - 을 수긍하지 못한 독자라면 이 이야기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 역시 중반쯤까진 이 의문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조금씩 작가에게 설득당하면서 리비아 부부에게 100% 감정 이입이 가능해진 게 사실입니다. “만일 내가 리비아라면? 애덤이라면?”이란 자문을 계속 던지면서 그들의 공포와 절망에 확실히 공감하게 됐다고 할까요?

 

공포와 미스터리를 앞세운 B. A. 패리스의 이전 작품들과는 확실히 결이 달라서 그녀의 팬 가운데 다소 실망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재미 면에선 좀 떨어지더라도 몰입감만큼은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다만 이 작품까지 모두 별 4개에 그칠 정도로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건 무척 아쉬운 점인데, 언젠가는 별 5개도 모자랄 만큼 꽉 찬 매력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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