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룸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7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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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룸블랙박스이후 한국에 2년 만에 소개된 해리 보슈 시리즈의 신작이자 17번째 작품입니다. 원작 출간이 2014년이니 무려 7년이 지나서야 한국 독자와 만나게 된 셈인데, 미국에선(2020년 기준) ‘해리 보슈 시리즈’ 23편이자 미키 할러 시리즈’ 6편인 ‘The Law of Innocence’가 출간됐다고 하니 시리즈 팬 입장에선 아직 읽을 작품이 많이 남았다는 기대감도 들지만 동시에 너무 늦어지고 있는 한국 출간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버닝 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새 출발의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시리즈 14나인 드래곤부터 시작됐던 개성 없는 표지들이 사라지고 강렬하고 화려한 표지가 등장한 점입니다. 개인적으론 여전히 나인 드래곤이전의 표지들이 그립지만 그래도 전집류 같은 획일적인 표지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또 내용면에서는 해리 보슈의 새로운 파트너 루시아 소토(이하 루시)가 등장한 점이 눈길을 끌었는데, 멕시코계 미국인, 5년도 안 된 신참, 강력계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체구 등 그동안의 보슈의 파트너들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무장 강도떼와의 총격전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럭키라는 별명처럼 행운을 몰고 다니는 것은 물론 침착하고 신중한 태도,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아는 총명함, 신참임을 무색하게 만드는 노련함 등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형사이기도 합니다. 애초 신경 쓰이는 교육생정도로 루시를 대했던 보슈는 함께 수사를 하는 동안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인재인지를 여러 차례 깨닫곤 합니다.

 

미제사건 전담반 소속의 보슈와 루시는 10년 전 광장 한복판에서 악단 연주자가 피격됐던 사건을 맡습니다. 최근 그 연주자가 사망하면서 몸 안에 박혀있던 총알을 회수할 수 있게 됐고 그 총알을 단서 삼아 범인을 찾아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정치적 거물과 그를 후원하는 재력가가 연루돼있는 탓에 두 사람의 수사는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힙니다.

한편 보슈는 루시가 다른 미제사건에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아냅니다. 21년 전의 방화사건이 그것인데, 루시는 당시 어린 희생자가 많았던 그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였고, 경찰이 된 뒤 언젠가 그 사건을 직접 파헤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보슈는 상부에 알리지 않은 채 루시를 돕습니다. 하지만 21년이란 시간은 두 사람에겐 큰 장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리즈 15드롭에서 퇴직유예제도(DROP)를 통해 형사로서의 삶을 39개월 연장받았던 보슈는 이제 퇴직까지 겨우 12개월 남짓한 시간만을 남겨놓은 상태입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경찰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착잡함을 감출 수 없던 그에게 유능하고 예의바른 신참 루시는 새로운 희망을 심어줍니다.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자신만의 노하우를 이 똑부러진 후배에게 모두 전수해주고 싶어진 것입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끝물 고참과 쌩쌩 신참의 케미는 지금껏 맛보지 못한 해리 보슈 시리즈의 신선하고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여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수사는 난항과 장벽에 수시로 부딪힙니다. 조기 해결을 강요하면서도 예산에는 인색한 상부,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정치가와 재력가, 하이에나 같은 언론의 관심까지 더해져 보슈와 루시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합니다. 또 루시가 연루된 21년 전 방화사건 역시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한 채 답답한 행보만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1/3지점까지는 예전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고 처진다는 느낌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완만한 신중함이 도드라졌고, 전광석화 같은 속도감보다는 거북이걸음 같은 꼼꼼함과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식의 디테일이 더 강조됐다는 뜻입니다.

 

뜨거운 문은 조심해야지. 불타는 방의 문을 섣불리 열면 안 되잖아.”(p187)

 

하지만 신참 루시의 캐릭터와 활약 덕분에 이 모든 아쉬움들이 어느 정도 상쇄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장래 경찰을 꿈꾸는 보슈의 17살 딸 매디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해서 더 이입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마이클 코넬리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루시는 다음 작품인 ‘The Crossing’까지만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루시가 보슈 곁을 떠나는 상황은 두세 가지 정도로 예상할 수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그저 아쉬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경찰로서의 삶이 12개월 남짓 남은 보슈가 LA경찰국 미제사건 전담반으로 활약할 작품은 잘 해야 두 편 정도일 것 같은데, 언제나 그랬듯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 않은 버닝 룸의 결말이 잘 해야 두 편 정도일 것 같은 보슈의 남은 경찰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벌써부터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입니다. 부디 다음 작품 ‘The Crossing’의 한국 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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