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매탐정 조즈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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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 고게쓰 시로는 아끼던 후배가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영매 조즈카 히스이와 파트너가 됐고 그 이후로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몇몇 살인사건을 함께 해결합니다. 북유럽의 피를 물려받은 듯한 비취색 눈동자를 지닌 조즈카는 어려서부터 신비한 능력을 지녀왔지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은 것은 물론 영시(靈視)를 통해 알아낸 진실을 어떻게도 입증할 길이 없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도와주겠다는 고게쓰의 말에 감동을 받곤 그의 파트너를 자청한 것입니다. 한편 4년에 걸쳐 젊은 여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유기해온 범인이 여전히 활개 치는 가운데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그 사건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과 함께 고게쓰와 조즈카는 충격적인 상황을 맞이합니다.

 

대부분의 미스터리나 스릴러에 영매가 등장하는 상황은 웃지 못 할 코미디 혹은 무능한 경찰의 막다른 선택 등 무척 냉소적이거나 황당한 형태로 그려진 게 사실입니다.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대어 소유자의 정보를 읽어내는 사이코메트리는 그나마 전문직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 산 자와 연결시켜주는 영매는 분명 사기꾼이란 이미지가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에게 영매탐정이란 타이틀을 붙인 이 작품이 과연 영매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설득력있게 그렸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영매란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존재죠. 그렇다면 저는 논리를 이용해 조즈카 히스이 씨의 힘이 현실과 이어질 수 있게 돕겠습니다.” (p111)

 

조즈카를 믿고 파트너가 되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애초 영 능력자라는 것을 그다지 믿지 않던 추리소설가 고게쓰입니다. 하지만 그는 눈앞에서 조즈카의 힘과 능력을 목격한 뒤 기꺼이 그녀의 파트너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위에서 인용한 대사 그대로 심령과 논리를 조합해 진실을 제시한다.”라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때론 자신들이 머물던 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나 경찰이 헤매고 있는 미제 사건들을 멋지게 해결합니다. 물론 대외적으로 조즈카는 고게쓰의 조수 혹은 수사자문으로 소개될 뿐이지만 조즈카의 힘과 능력에 대한 고게쓰의 신뢰는 나날이 깊어지고 두터워집니다. 비취색 눈동자를 지닌 미인 조즈카의 매력은 고게쓰로 하여금 불쑥불쑥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게 하는데, 두 사람 사이의 로코 분위기는 색다른 흥미와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연쇄살인범의 독백을 담은 인터루드’(막간극)를 제외하고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앞선 세 편의 이야기는 조즈카-고게쓰 콤비의 첫 만남과 살인사건 해결과정을 그리고 있고, 마지막 편에선 4년 동안 젊은 여성들을 살해하고 유기한 연쇄살인범과의 최후의 대결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이 최후의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독자는 깜짝 놀랄 첫 번째 반전과 맞닥뜨립니다. 초반 혹은 중후반쯤 이 반전을 눈치 챈 독자도 있겠지만, 이어지는 또 다른 반전은 작가의 엄청나고 빈틈없는 설계와 함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기막힌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 부분까지 예상한 독자는 거의 없을 거란 생각입니다.

물론 살짝 억지로 끼워 맞추는 본격의 향기가 느껴진 점이나 연쇄살인범의 동기가 다소 모호하게 그려진 점은 아쉬운 대목이었지만 본편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시금 앞의 이야기들을 뒤집는 반전의 떡밥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머릿속이 얼얼해지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손바닥 위에 독자를 올려놓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듯한 작가의 공력에 여러 번 속수무책으로 당한 느낌이랄까요?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는 고딕 이미지부터 여리고 순수하고 눈물 많은 소녀 이미지, 소름 돋게 만드는 냉혹한 악녀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팔색조처럼 변신하는 조즈카의 매력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으뜸 공신입니다. 후속작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매탐정 조즈카가 자신의 힘과 능력을 더욱 강렬하게 발휘하는 미스터리로 독자들을 다시 찾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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