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악몽의 관람차 ㅣ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오사카의 한 관람차에서 기괴한 인질극이 벌어집니다. 범인은 말단 야쿠자 다이지로. 동행한 30대 여성 니나를 인질로 잡은 그는 관람차를 정지시킨 뒤 그녀의 아버지에게 6억 엔이라는 거금을 요구합니다. 탈출이 불가능한 관람차 주변을 경찰이 둘러싼 가운데 다이지로의 인질극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한편 다이지로의 앞뒤 칸에는 어딘가 수상쩍은 인물들이 타있습니다. 4차원 전업주부 아사코와 가족들, 전설적인 소매치기였던 70대 노인 긴지, 그리고 이별해결사라는 묘한 직업을 가진 미스즈 등이 그들인데, 왠지 평범한 관광객도 아닌 것 같고 눈앞에 닥친 인질극에 대해서도 수상한 태도를 보일 뿐입니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뭘까요?
한국에는 단 네 편의 작품밖에 소개되지 않은 기노시타 한타는 개인적으로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에 비해 너무 저평가된, 또 너무 덜 알려진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앞서 읽은 ‘악몽의 엘리베이터’나 ‘삼분의 일’, 그리고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엔터테인먼트 스릴러의 미덕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데, 속사포처럼 빠른 속도감과 롤러코스터 같은 좌충우돌 전개에 코믹과 액션과 감동과 반전까지 골고루 지닌 수작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악몽의 관람차’는 치밀하고도 격정적인 복수 코드까지 가미된 덕분에 앞서 읽은 두 작품과는 사뭇 다른 여운과 인상을 남기기도 했는데, “도대체 이렇게 판을 벌려놓고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지?”라는 의문을 수시로 갖게 만드는 기노시타 한타 특유의 기발한 설정과 캐릭터가 복수라는 진지한 코드와 만나면서 재미 이상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납치 인질극이 시작되기까지의 과정, 관람차에 갇힌 주요 인물들의 과거사, 그리고 인질극의 마무리 등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어져있습니다. 특히 과거사를 다룬 중반쯤에 이르러 범인 다이지로와 인질 니나는 물론 앞뒤 칸에 탄 인물들이 결코 우연히 한날한시에 이 기괴한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독자는 작가의 교묘하고도 빈틈없는 설계에 여러 번 감탄하게 됩니다. 또 클라이맥스에서 그가 왜 굳이 관람차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는가가 폭로되는 순간 독자는 그저 재미있게만 읽혔던 앞의 내용들을 새삼 다른 감정으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야말로 재미와 감동과 안타까움이 절묘하게 뒤섞인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라고 할까요?
‘악몽 시리즈’는 한국에 출간된 두 작품 외에도 ‘惡夢のクロ-ゼット’(악몽의 벽장), ‘惡夢の商店街’(악몽의 상점가), ‘惡夢のギャンブルマンション’(악몽의 도박 맨션), ‘惡夢のドライブ’(악몽의 드라이브) 등이 일본에서 출간됐습니다. 가장 최근에(2014년) 한국에 소개된 ‘삼분의 일’이 포함된 ‘분수 시리즈’ 역시 ‘삼분의 이’, ‘오분의 일’, ‘칠분의 일’ 등 여러 작품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어느 곳에서든 그의 매력적인 작품들을 출간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노시타 한타의 독특함과 기발함이라면 충분히 한국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한국 소개작 중 아직 못 읽은 그의 작품은 ‘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만이 남았는데, 이미 절판된 지 오래라서 중고서점을 뒤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서평을 쓰지 않던 시절에 읽었던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악몽의 엘리베이터’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빠른 템포와 숨이 찰 정도의 재미난 스릴러를 찾는 독자라면 이번 여름에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들과 만나보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