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타기타 사건부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5월
평점 :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 월드 2막’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16세 소년 기타이치를 선보였습니다. 복어를 먹다가 졸지에 세상을 떠난 오캇피키(하급관리의 지명을 받아 치안업무를 맡던 민간인) 센키치 대장의 막내 수하이며, 대장이 생업으로 삼아 제작하던 문고(두꺼운 종이로 만든 상자)를 멜대에 담아 거리에서 팔던 ‘문고 행상’ 소년입니다.
그동안 ‘미야베 월드 2막’의 주인공들은 조금씩 성격이 다르긴 해도 나름 특별한 능력이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기타이치는 능력도, 나이도, 카리스마도 심지어 외모조차 다소 부족한 축에 속합니다. 그의 장점이라면 선하고 순수한 정의감 정도라고 할까요?
“센키치 대장은 기타(이치)의 따뜻한 마음씨, 약자를 돕는 친절한 마음을 칭찬했어. 그건 기타가 타고난 천성이고 버리지 말아야 할 장점이라고.” (p218)
‘착한 주인공’임엔 분명하지만 괴담이 가미된 시대물 미스터리를 이끌어갈 카리스마는 확실히 부족합니다. 그래선지 미미 여사는 그의 주변에 여러 능력자들을 배치했습니다. 센키치 대장의 미망인인 마쓰바는 시력을 잃었지만 뛰어난 감각능력과 추리력을 갖춘 최고의 후원자입니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에도의 미스 마플’입니다.) 이 시리즈의 명칭을 ‘기타이치&마쓰바 시리즈’로 삼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또 무력을 담당하는 ‘목욕탕 가마 일꾼’ 기타지, 사무라이 신분이지만 못 하는 일이 없는 만능꾼 오우미 신베에, 센키치 대장의 절친으로 호색한이란 것 외엔 모든 게 불분명한 미스터리한 셋집 관리인 도미칸 등 다양한 능력자들이 기타이치를 음으로 양으로 돕고 있어서 마치 ‘에도 어벤저스’ 같은 인상을 풍기는 점은 사뭇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여러 모로 부족하다보니 기타이치가 혼자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오캇피키가 되고 싶었던 기타이치는 “센키치 대장이 살아 있었다면...”이란 생각을 머릿속에 품은 채 매 상황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성장시킵니다. 동시에 주변의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그것을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합니다. 말하자면 아직은 새싹에 불과한 기타이치가 센키치 대장 못잖은 큰 나무로 성장하는 과정이 괴담이나 사건 못잖게 독자들의 관심거리가 될 거란 뜻입니다.
모두 네 편의 중단편이 수록돼있는데, 아무래도 시리즈의 첫 편이다 보니 기타이치와 주변 인물들의 소개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기타이치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곤 있지만 조력자들 역시 만만치 않은 캐릭터들이라 여러 페이지에 걸친 설명이 필요한 건 사실인데, 덕분에 괴담 미스터리는 상대적으로 심플하거나 덜 복잡하게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또 이전 작품들에 비해 역주(譯註)가 꽤 많이 눈에 띄어서 이 작품을 통해 ‘미야베 월드 2막’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조금 머리가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직전 작품인 ‘눈물점’까지 마스터한 저도 처음 접하는 단어들이 많았는데, ‘초보독자’라면 에도시대에 관한 기초 지식을 요약해놓은 ‘역자 후기’(p373~376)를 먼저 읽으면 큰 도움일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의 새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게 사실인데, “히어로는 없고 입장이 약한 사람들뿐인 이 이야기는 필생의 과업인 ‘미시마야 시리즈’와 함께 제가 현역으로 있는 이상 앞으로도 쭉 이어가고 싶습니다.”(p381)라는 미미 여사의 의지를 보곤 이 시리즈에 대한 그녀의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야베 월드 2막’의 광팬인 저 역시 당연히 기타이치에게 더 애정을 갖고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시리즈 오프닝인 이 작품은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이 꽤 많습니다. 베일에 싸인 기타이치 주변의 능력자들의 사연도 궁금하고, 오캇피키의 꿈과 함께 문고상으로 독립하려는 뜻을 굳힌 기타이치가 어떻게 성장해나갈지도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네 편의 수록작을 통해 이미 한 뼘 이상 훅 자란 기타이치가 이후 어떤 사건, 어떤 괴담들과 마주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건 ‘미야베 월드 2막’의 팬이라면 누구나 갖는 비슷한 심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