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이 한국에 출간된 게 2007년인데, 그해 혹은 그 다음해쯤 읽은 기억이 있으니 10년도 훌쩍 넘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서평을 쓰지 않던 시절에 읽은 탓에 수록된 단편들의 줄거리도, 여운이나 느낌도 그저 가물가물한 상태였는데, 얼마 전 불쑥 일본의 온천 생각이 떠올라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첫사랑 온천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일본의 온천은 료칸이라는 숙박시설과 짝을 이루게 되면 좀더 고즈넉하거나 정갈한 분위기를 발산하게 되지만, 동시에 은밀하고 에로틱하고 비밀스러운 이미지를 품게 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딱 한 번 일본의 관광지인 유후인의 료칸에서 노천탕이 딸린 방에 며칠 머물렀던 경험 덕분에 그 양면적인 분위기를 수박겉핥기식으로나마 맛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요시다 슈이치의 첫사랑 온천은 제겐 제목만으로도 여전히 가슴 설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다섯 커플의 다섯 가지 이야기가 다섯 곳의 온천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단편집인데 온천과 커플이라는 소재에서 알 수 있듯 이야기의 테마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말랑말랑하고 훈훈한 엔딩으로 포장된 해피 로맨스만 그려지진 않습니다.

순수하고 원초적인 욕망에 휩싸인 17살 남자의 첫사랑(‘순정 온천’), 결혼을 앞둔 20대 남자가 설국(雪國) 속 온천에서 느끼는 사랑에 대한 소박한 만족과 기쁨(‘흰 눈 온천’), 결혼 2년차에 불륜에 빠진 남자가 겪는 미묘한 심리적 변화(‘망설임의 온천’), 그리고 행복하고 여유있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실은 자기애 혹은 이기심에 다름 아닌 행위들이었기에 결국 그로 인해 사랑을 잃어버리고 마는 남자(‘첫사랑 온천’,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다섯 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온천 역시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는데, 바닷가, 숲속, 설국, 계곡 등 다채로운 풍경 속에 자리한 온천들은 온몸을 풀어지게 만드는 뜨거운 온천수와 그것이 뿜어내는 김의 향연까지 더해져 사랑 때문에 희로애락을 겪는 주인공들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하거나 심난하게 만들곤 합니다. 인물들도, 이야기도 특별하진 않지만 온천이라는 공간의 고즈넉하면서도 에로틱한 매력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로망 가운데 하나는 눈으로 파묻힌 훗카이도 어디쯤의 료칸에서 방에 딸린 개인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책과 사케만으로 1주일쯤 보내다 오는 것입니다. 그곳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흘러갈 것만 같고, 책과 사케 역시 현실과는 전혀 다른 맛을 풍길 것 같기 때문입니다. , 사랑이든 증오든 어떤 감정을 품고 갔더라도 설국의 풍경과 뜨거운 온천수 속에서 조금은 스스로를 정리하거나 내려놓을 수 있는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첫사랑 온천의 수록작들이 그런 기대와 느낌을 모두 맛보게 해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이런저런 소소한 즐거움과 망상(?)을 만끽한 건 사실입니다. 비슷한 경험을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요시다 슈이치의 온천과 사랑 이야기를 한번쯤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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