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차일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그동안 다운 리버’, ‘아이언 하우스’, ‘구원의 길등을 읽었지만 정작 존 하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라스트 차일드는 매번 읽어야지 하면서도 왠지 감당하기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아 계속 뒤로 미뤄온 작품입니다. (가해자든 희생자든) 어린 소년이나 소녀의 비극이 가슴 한쪽에 무겁고 날카로운 바위를 끝없이 얹어놓는존 하트 특유의 문장들로 그려진다면 앞서 읽은 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한 여운을 남길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13살 소년 조니 메리멈의 세상은 1년 전 쌍둥이 여동생 앨리사가 유괴된 이후로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죄책감과 절망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사악한 부자에게 짓밟힌 끝에 약물중독자로 전락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린 조니에게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조니의 목전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한 낯선 남자가 유괴된 여자아이를 찾았어.”라는 유언 같은 말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마을에서 앨리사 또래의 소녀가 또다시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조니는 그동안 자신이 주시해온 인근의 범죄자들의 동태를 직접 살펴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끔찍한 상황과 마주치게 됩니다.

 

사라진 여동생을 찾기 위한 조니의 여정은 성인조차 감당하기 쉽지 않은 위기와 공포로 가득합니다. 경찰마저 손을 놓은 상태에서 그동안 조니는 지도 한 장에 의지하여 인근의 주민들을 탐문해온 건 물론 위험천만한 성 범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잠복까지 감행하며 조사해왔습니다. 그런 조니에게 유괴된 여자아이를 찾았어.”라는 낯선 남자의 한마디는 거대한 희망 그 자체였고 그 뒤로 조니의 행보는 경찰과 언론마저 놀라게 할 만큼 거침없이 전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고 조니의 위기는 갈수록 임계점에 육박합니다. 더구나 어머니를 파멸로 몰아넣은 사악한 부자까지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 조니는 그야말로 몸과 마음 모두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앨리사의 유괴가 붕괴시킨 또 하나의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 가운데 유일하게 앨리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는 수사반장 헌트의 가족입니다. 앨리사 사건에 대한 그의 과도한 집착은 아내를 떠나게 만든데 이어 아들에겐 치유되기 어려운 증오심만 심어놓았습니다. 서장마저 노골적으로 해고를 운운하며 앨리사 사건에 대한 헌트의 집착을 저지하려 하는데, 문제는 이런 헌트의 노력이 좀처럼 조니에게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13살이란 나이보다는 악()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나머지 조니에겐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챌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악()은 앨리사를 유괴한 범인만이 아닙니다. 조니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끔찍한 폭력과 살인이 펼쳐지고 과거의 참극들이 세상에 폭로됩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악 그 자체인 인간의 이기심과 사악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13살 소년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인 셈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작품 후반부에 거듭 등장하는 악은 인간의 마음에서 자라난 암과 같아.”라는 대사는 조니가 마주친 악의 실체를 한마디로 잘 압축한 문장이란 생각입니다. 제멋대로 자라나 사방에 죽음의 씨앗을 뿌려대지만 도무지 뿌리까지 잘라낼 수 없는 그 암적 존재 앞에서 인간이란 그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메시지라고 할까요?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은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캐릭터인 탈옥수 레위 프리맨틀과 그가 조니와 맺는 다분히 신의 영역에 가까운 관계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사악한 까마귀를 두려워하는 레위는 호러 스릴러에나 어울릴 것 같은 캐릭터지만 작가는 그를 현실의 사건 한복판에 배치시키고 조니와 거듭 만나게 만듭니다. 그저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둘의 만남은 앨리사 찾기라는 메인 사건과는 무관한 별개의 에피소드처럼 시작되지만 뒤로 갈수록 진실을 향한 유일한 열쇠처럼 그려지기도 합니다. 물론 거기엔 또 다른 복선이 깔려있고 예상 못한 반전이 설치돼있긴 하지만, 취향에 따라 읽는 중에도 또 다 읽은 뒤에도 계속 고개를 갸웃거릴 독자가 적잖을 것으로 보입니다.

 

워낙 방대한 내용에 등장인물도 많아서 일일이 소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이지만 두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을 만큼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독자마다 평가가 다소 극단적으로 갈리긴 해도 존 하트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만의 매력을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으로부터 10년이 흘러 23살의 청년이 된 조니의 이야기를 다룬 허쉬가 한국에도 얼마 전(20214)에 출간됐는데, 그동안 책장에 오래 방치했던 라스트 차일드를 서둘러 읽은 건 실은 허쉬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존 하트의 작품은 연이어 읽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성인조차 쉽게 떨쳐내지 못할 트라우마를 겪은 13살 조니가 어떻게 성장해있을지, 또 이번에는 그에게 어떤 불행과 비극이 찾아들지 다분히 우려 섞인 기대감이 드는 것은 역시 피할 수 없는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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