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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봄 ㅣ 가노 라이타 시리즈 1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평점 :
무척 흥미로운 캐릭터의 주인공이 이끄는 미스터리 연작단편집입니다. 지금은 가미쿠라 역 앞 파출소의 다소 실없고 친절하고 수더분한 40대 순경 아저씨지만 실은 ‘자백 전문 가노’라는 별명으로 가나가와 현경 수사1과에서 맹활약하던 가노 라이타가 그 주인공인데, 그는 별명대로 단서나 증거보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용의자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거나 자백하게 하는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용의자 대부분은 가노의 ‘허허실실 작전’에 휘말려 자기도 모르게 진실과 거짓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깊은 함정에 빠져버린 자신을 깨닫곤 크게 당황합니다. 가노는 용의자의 표정 하나, 땀방울 하나를 통해 진술의 허점을 파악하면서 조금씩 코너로 몰아가다가 결정적인 한 방으로 그(녀)를 무너뜨립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렇다 보니 수록작 모두 처음부터 범인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 시점 자체도 범인 입장에서 전개되고 마지막 마무리 정도만 가노가 맡는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이른바 도치서술 추리, 즉 ‘도서(倒敍)추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형식은 사실 작가에겐 무척이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게 주인공이 워낙 뛰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 이미 독자가 범인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막판을 장식할 또 하나의 반전까지 마련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당신은 반드시 다섯 번 속게 된다!”는 홍보카피는 이 작품이 ‘도서추리’의 모든 난관을 극복한 매력적인 미스터리라는 점을 대놓고 자랑하는 셈인데, 개인적으론 다섯 편의 수록작 중 두 편만큼은 확실히 이 홍보카피에 어울리는 수작이라는 생각입니다.
스스로 소아성애자라는 강박에 휩싸인 청년이 실제로 소녀를 납치-감금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곤란에 빠진 뒤 가노에게 진상을 들키고 마는 첫 수록작 ‘봉인된 빨강’과 젊은 날의 상처 때문에 평생 외롭게 살면서 보이스 피싱과 노인 상대 사기행각을 벌여온 60대 여성이 끝내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하는 표제작 ‘거짓의 봄’은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었는데, 우연히도 ‘작가들’ 스스로 꼽은 최고의 작품이기도 해서 많은 독자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호평에 비해 평점이 좀 야박한 건 나머지 수록작들이 다소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수록작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위에서 ‘작가들’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후루타 덴’이 80년대 생 여성 콤비 작가 하기노 에이와 아유카와 소의 공동 필명이기 때문입니다. 각각 플롯과 집필을 분담하고 있다는데 작가 소개글을 보니 이미 2014년부터 화제작을 내온 터라 2021년에 와서야 한국에 처음 소개된 사실이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는 띠지 카피를 봤을 때는 ‘콤비 작가’라는 점보다 ‘노회한 베테랑’이 먼저 떠올라 “내가 모르는 엘러리 퀸 급 작가가 있었나?”라는 의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한때 ‘자백 전문 가노’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용의자 심문의 달인이었던 가노 라이타가 왜 역전 파출소의 사람 좋아 보이는 허허실실 순경 아저씨가 됐는지는 마지막 두 수록작에서 연이어 밝혀지는데, 그런 덕분에 가노의 활약을 계속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일본에서 ‘아침과 저녁의 범죄’라는 후속작이 연재 중이라는데 더 기대가 되는 건 장편이란 점입니다. 이 작품의 경우 아무래도 단편집인데다 범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분량이 더 많다 보니 가노의 활약상이 덜 보인 게 아쉬웠는데, 장편이라면 그런 아쉬움을 모두 잊게 해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의 연재가 마무리 되는대로 한국에도 바로 후속작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