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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아이들 - 인기 웹드라마 〈은비적각락〉 원작소설
쯔진천 지음, 서성애 옮김 / 리플레이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수학 천재이자 전교 수석을 달리는 닝보시 중학교 2학년 주차오양은 난데없이 자신을 찾아온 초등학교 동창 딩하오와 그의 의남매 푸푸 때문에 한순간에 인생이 뒤틀어지고 맙니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우연히 끔찍한 살인 장면을 녹화하게 된 것은 물론 직접 살인에 개입하는 참사까지 겪게 됐기 때문입니다. 주차오양은 한편으론 동영상 속 살인범과 위험천만한 거래를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신이 개입한 살인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골몰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심하고 겁 많던 14살 소년 주차오양의 눈빛은 그 어떤 살인마와도 비견될 정도로 냉혹하고 잔인하게 변해갑니다.
쯔진천의 작품들 가운데 ‘무증거범죄’, ‘나쁜 아이들’,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일명 ‘추리의 왕(推理之王) 시리즈’로 불립니다. ‘나쁜 아이들’은 가장 나중에 한국에 소개된 작품인데, 시리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수학 교수이자 범죄논리학 전문가 옌량보다도 세 명의 10대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다른 작품들과는 톤과 결이 전혀 달라 보였습니다.
그 또래에 어울리는 쉽고 간결한 문장들은 때론 유치해 보이기도 했지만, 끔찍한 살인사건에 얽혔다는 공포심과 함께 그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비참한 가족사가 이야기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탓에 그 어느 작품보다도 무겁고 불편한 책읽기가 됐다는 뜻입니다.
‘우연한 살인 목격’과 ‘우발적인 살인’으로 촉발된 주차오양의 비극은 마치 오래전부터 예정됐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전개됩니다. 고아원을 탈출한 뒤 도망치던 딩하오와 푸푸의 느닷없고 우연한 방문, 우연히 포착한 살인 장면,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영상 속 살인범, 그리고 놀이공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밉살스런 이복동생 등 주차오양의 비극은 대부분 ‘우연과 우발’에 의해 거침없이 폭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뛰어난 수재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뒤 아버지의 새 여자와 딸에게 무시당하면서 비참한 10대 시절을 보낸 주차오양의 소름 돋는 변신과 성장은 “그래선 안 돼!”라는 안타까움과 “부디 너의 계획이 모두 성공하기를!”이란 위험한 응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시리즈 주인공인 옌량은 과거 뛰어난 경찰이자 범죄논리학 전문가였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지금은 저장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선 거의 카메오에 가까운 역할만 맡고 있지만, 막판에 사건의 진실을 파악한 그가 주차오양에게 품은 양립 불가능한 감정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단순히 ‘진실 혹은 진범 찾기’가 아닌 그 이상의 무겁기 그지없는 의미를 갖게 만듭니다. 출판사가 소개한 “중국판 백야행”이라는 독자 리뷰는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출판사가 극도로 내용 소개를 아끼고 있어서 서평에서 자세한 줄거리나 캐릭터 소개를 하기가 어려운데, 개인적으론 재미나 여운 등 모든 면에서 ‘동트기 힘든 긴 밤’에 못잖은 작품이라 쯔진천의 팬이라면 대부분 만족할 것이 분명하고 그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충분히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만 중언부언해야 될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앞선 시리즈 두 작품이 모두 한스미디어에서 나왔지만 이 작품만은 다소 생소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출간돼서 의아했습니다. 일부이긴 해도 편집에서 아쉬운 대목들이 보인 게 사실이고, 무엇보다 (스포일러가 될 부분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도) 인터넷 서점에 실린 출판사 소개글은 쯔진천의 팬이 아닌 일반독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데다 ‘떡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또 엄밀히 따지면 이 작품의 번역제목은 복수형이 아니라 단수형인 ‘나쁜 아이’가 맞다는 생각인데, 특히 다 읽은 후에는 복수형 제목 자체가 작품의 의미를 오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