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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신흥 명문가 호겐 가(家)의 여주인 야요이로부터 실종된 손녀 유카리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았지만 도무지 진척이 없어 고민 중이던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진사 혼조가 사건 의뢰를 위해 갖고 온 기괴한 결혼사진을 보곤 깜짝 놀랍니다. 지금은 폐허가 된 호겐 가의 옛 가옥(일명 ‘병원 고개 저택’)에서 찍힌 그 사진의 주인공은 실종된 유카리와 낯선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조사를 하기도 전에 이번엔 바로 그 가옥에서 잔인하게 잘린 남자의 목이 발견되어 긴다이치 코스케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자백을 담은 유서가 현장에서 발견됐지만 결국 범인을 찾아내진 못했고 실종됐던 유카리마저 제 발로 호겐 가로 돌아오면서 두 사건 모두 미제 상태로 흐지부지 종결됩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어느 날, ‘병원 고개 저택’의 저주는 또 다시 호겐 가를 끔찍한 살인극 속으로 몰아넣기 시작합니다.
길고도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긴다이치 코스케의 마지막 인사”라는 ‘작품해설’ 제목대로 77편에 이르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후 ‘악령도’가 출간되긴 했지만 긴다이치 코스케가 과거에 맡았던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 실질적으로는 이 작품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되는 것입니다.
연재 시작 전부터 작가가 이미 ‘마지막’을 결심한 탓인지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군살(?)도 꽤 많고 전개 속도도 많이 느린 것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메모가 필요할 정도로 엄청나게 복잡합니다. 마치 ‘마지막’을 어떻게든 늦춰보려는 노작가의 아쉬움이 엿보인다고 할까요? 작은 비중의 조연이나 사소한 풍경들까지 과도할 정도로 상게하게 그린 걸 보면 그리 틀린 추측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덕분에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살짝 지루하게 읽힌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메이지시대 이후 5대에 걸친 호겐 가의 복잡한 가계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그 주위에 속물적인 사업가 가문이자 호겐 가의 불행을 잉태시킨 이가라시 가, 대를 이어 기생충처럼 호겐 가에 빌붙은 탐욕스런 사진사 가문인 혼조 가까지 자리 잡고 있는데다 첩, 불륜, 근친혼 등 일그러진 혈연관계까지 뒤엉킨 실타래처럼 끼어드는 바람에 메모 없이는 좀처럼 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사건 역시 기괴하고 엽기적인 것은 물론 20년의 간극을 두고 벌어지고 있어서 이야기의 큰 그림을 이해하기가 그 어느 작품보다도 난감했는데, 동시에 이 ‘난감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것도 사실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대부분이 그렇듯 이 작품에서도 문란한 성(性)과 혈연에의 집착이 비극의 단초로 작동하는데,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인간 본능의 저열하면서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생생한 민낯과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본능을 이용한 추악한 탐욕과 그 본능 때문에 빚어진 빗나간 애증이 가세하면서 비극은 한없이 확장되고 그만큼 적잖은 인물들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런 탓에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긴다이치 코스케는 물론 독자에게 남는 것은 참담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묵직한 회한과 여운뿐입니다.
등장인물도 워낙 많고 사건도 미로처럼 복잡해서 상세한 줄거리 소개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이다 보니 어중간한 서평이 되고 말았는데, 그만큼 이 작품은 사전정보 없이 읽어야 제 맛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사건에 비해 과도한 분량이라든가 사족처럼 보일 정도로 온갖 것에 동원된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트릭보다는 비극 자체에 초점을 맞춘 서사 등 개인적으론 아쉽게 여겨진 대목들이 많아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마지막 사건’만 아니라면 그동안 읽은 작품들에 비해 높은 평점을 주긴 어려운 작품이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를 애정해온 독자 입장에서 팔팔한 20대에서 노회한 60대에 이르기까지 산전수전을 겪어온 주인공과 이별해야 한다는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기도 해서 예우(?) 차원의 평점을 준 게 사실입니다.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을 끝으로 현재(2021년 4월)까지 한국에 소개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다시 읽기’를 모두 마쳤는데, 시리즈를 다시 정주행하고 보니 그동안 순서와 무관하게 띄엄띄엄 읽었던 것에 비해 훨씬 더 각 작품의 매력과 미덕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당장 더는 읽을 작품이 없다는 게 너무 아쉽긴 하지만, 올해 7년 만에 출간될 ‘미로장의 참극’을 시작으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자주, 꾸준히 한국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