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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이동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2 ㅣ 미치 랩 시리즈 1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10여 명의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백악관을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대통령은 겨우 지하 벙커로 대피하지만 적잖은 인질들이 테러범들에게 억류된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 사내가 투입되는데, 그는 바로 CIA의 대 테러센터 비밀요원 미치 랩이다. 대학 시절 테러로 여자친구를 잃은 후 복수를 위해 요원이 된 미치 랩은 10여 년간 엄청난 성과를 올려온 최고의 살상무기다. 백악관으로 침투한 미치 랩은 당초 보고와 달리 벙커 속의 대통령이 안전하지 않음을 발견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구출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내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미치 랩 시리즈’는 꽤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첩보액션=영화’라는 선입견 때문에 좀처럼 책으로 읽을 생각을 안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모 카페의 댓글에 달린 이 시리즈에 대한 찬사를 보곤 첫 편인 ‘권력의 이동’을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구하게 됐습니다.
초반부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테러리스트 납치 장면까지만 해도 “역시 첩보액션은 영화로 봐야 돼.”라며 한숨이 나왔지만, 이내 백악관을 점령당하고 미치 랩이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는 대목부터는 갑자기 몰입감이 확 높아지면서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을 단숨에 마무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미드 ‘24’나 영화 ‘제이슨 본 시리즈’를 활자로 읽는 듯한 짜릿함이랄까요?
이야기 얼개나 인물들의 구도는 ‘대 테러리스트 첩보액션물’의 전형적인 스타일에 충실합니다. 슈퍼울트라급 주인공 미치 랩과 그를 돕는 매력적인 조연들(은퇴요원 밀트 애덤스, 여기자 애너 릴리), 냉혹하고 잔인한 테러리스트들, 진압작전을 전개하는 CIA와 특수부대, 벙커에 갇힌 ‘정의로운’ 대통령과 경호팀,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비열한 정치인들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숨 막히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미치 랩은 CIA의 대 테러센터 오리온팀의 비밀요원이지만 실은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비공식 프리랜서입니다. 10여 년 전 비행기 테러로 여자친구를 잃은 뒤 비밀요원의 길을 걷기 시작한 미치 랩은 말 그대로 제이슨 본 못잖은 최고의 살상무기로 진화했습니다. 여느 첩보액션물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터프하고 시니컬하지만 그의 진짜 매력은 터뜨릴 때 터뜨릴 줄 아는 다혈질 성격과 비밀요원으로서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수시로 회의에 잠기곤 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람 냄새가 제대로 나는 살인기계라고 할까요?
‘테러리스트들의 백악관 점령’이라는 희대의 사태를 놓고 벌어지는 정치인들의 비열한 처신과 오로지 작전 성공만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실무진들의 분투, 그리고 그들 사이의 팽팽한 갈등도 눈길을 끄는 대목인데, 다만, 의외로 ‘배신자 캐릭터’가 단순한데다 특별한 반전 같은 게 없어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미드 ‘24’의 경우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전개가 백미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권력의 이동’은 비교적 돌직구에 가까운 구도였다는 생각입니다.
미치 랩과 함께 백악관 내부에서 위태로운 미션을 수행하는 두 인물 - 은퇴요원 밀트 애덤스, 여기자 애너 릴리 – 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는데, 이들이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 미치 랩과 활약을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메오로라도 좋으니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미치 랩과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치 랩 시리즈’는 이른바 미국의 패권을 미화하고 자국의 이익이 곧 선이고 정의라는 ‘미국 제일주의’의 전형적인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다소 비판적인 책읽기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소설은 단지 소설일 뿐이니까.”라는 ‘옮긴이의 말’대로 재미있는 첩보액션 그 자체로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미치 랩 시리즈’를 순서대로 다 읽게 될 것 같은데, “대통령의 비밀 지령을 받아 중동 테러리스트들에게 생화학 무기 공장을 지원하는 유럽 기업가를 암살하러 나선다.”는 두 번째 작품 ‘제3의 선택’은 물론 한국에 출간된 나머지 시리즈 모두 머잖아 제 손에 들어올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