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유능한 협상전문가였던 알렉산더 초르바흐는 7년 전 비극적인 사고 이후 범죄 전문기자로 살아가는 중입니다. 현재 그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이른바 눈알수집가사건.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이를 납치한 뒤 아버지에게 제한시간 안에 아이를 찾아내라는 요구를 남긴 범인은 제한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살해하고 한쪽 눈알을 제거하는 전대미문의 연쇄살인범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 사건 이후 초르바흐는 뜻밖에도 경찰의 의심을 사게 됩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맹인 영매 알리나는 눈알수집가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들려줍니다.

 

독일의 스릴러를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제바스티안 피체크는 그 가운데 유독 독특한 인상을 받은 작가입니다. 대다수의 대중적인 독일 스릴러와는 달리 사이코스릴러로 분류될 만큼 등장인물들의 이상심리를 강렬하고 집요하게 그리는 것은 물론 사건 자체도 엽기적이거나 기괴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첫 페이지를 펼치기 전부터 나름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할 수밖에 없는데,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눈알수집가는 초반부터 인물과 사건 모두 그 어느 작품보다 세고 독한 설정으로 포장돼있어서 마음의 준비라는 게 아무 소용없었음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협상전문가 시절의 사고로 인해 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심리치료를 받으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초르바흐는 아직도 자신이 환각, 환청, 환영을 겪는다는 두려움에 빠져있습니다. 직장을 잃고 가정마저 해체되기 직전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알수집가 사건에 유달리 집착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은 그의 트라우마와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눈알수집가와 엮으려 하거나 심지어 눈알수집가로 오인 받게 만드는가 하면, 난데없이 나타난 맹인 영매 알리나는 눈알수집가와의 접촉을 통해 목격한 살인-납치 장면을 들려주며 초르바흐의 정신을 뒤흔들어놓기 때문입니다.

사이코스릴러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설정이긴 하지만 안팎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초르바흐를 지켜보는 것은 꽤나 불편하고 힘든 일입니다. 물론 그것이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자 소구력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초르바흐만큼이나 시선을 끄는 인물은 맹인 영매 알리나인데, 그녀는 시종일관 눈알수집가와 대결을 벌이는 초르바흐를 곁에서 지원하는 것은 물론 접촉을 통해 목격했으나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한 눈알수집가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기 위해 분투합니다. 다만, 영매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순간 잠시 얼떨떨했던 게 사실인데, 이 대목에서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알리나의 특별한 능력에 대한 이질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금세 제바스티안 피체크 표 사이코스릴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이를 납치한 뒤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45시간 7분이라는 제한시간 안에 찾아내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눈알수집가의 범행 동기는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이 부분은 개인적으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정도로 다소 작위적으로 읽힌 게 사실입니다. 독일과 북유럽 스릴러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트라우마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 소시오패스설정은 때론 공감이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설정을 위한 설정처럼 느껴지곤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작품이 같은 해(2010) 출간된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제치고 독일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크라임&스릴러로 뽑힌 걸 보면 적어도 독일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범인과 범행 동기가 전혀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긴 합니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눈알사냥꾼이라는 작품 제목을 들어본 적 있는 독자라면 눈알수집가가 그 자체로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꽤 큰 떡밥과 함께 다음 이야기를 위한 숙제를 남겨놓았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는데, 맺음말과 서문에 등장하는 고통의 최정점에 서서 죽음이 이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자, 그 남자가 나다.”라는 초르바흐의 절규는 눈알사냥꾼이라는 후속작에 대한 두려움 섞인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결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찾아 읽게 되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매력의 실체가 뭔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의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출간목록을 만들고 아직 읽지 못한 작품들을 중고로라도 사들이는 걸 보면 그에게는 제 스스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특별하고도 불온한 인력(引力)이 존재하는 것 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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