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짓말쟁이 너에게 - JM북스
사토 세이난 지음, 김지윤 옮김 / 제우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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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를 꿈꾸는 28살 이토 키미히로는 2년 전 연인과의 결별 뒤로 의식적으로 연애와 담을 쌓고 사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술집주인의 갑작스럽고도 우발적인 소개로 7살 연하의 여대생 나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삭막하던 키미히로의 삶에 아주 조금씩 나나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얼마 후 나나에 대한 감정을 확신한 키미히로는 최근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있는 법무사무소의 동료 미네기시 유코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사토 세이난은 꽤 오래 전 아동학대사건을 다룬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한국 출간 2012)이란 작품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메모와 서평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꼭 찾아서 읽어볼 것이라고 적었지만,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단 한 편도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탓에 그 다짐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그의 작품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너무 반가웠는데, 어딘가 연애소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표지와 그에 걸맞은 제목이 앞서 읽은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의 느낌과 너무 달라서 잠시 당황한 게 사실입니다.

 

미스터리로 분류된 작품이지만 대략 1/3쯤 되는 1장까지는 삼각관계 연애소설의 전형적인 이야기가 전개돼서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사건이 어떤 식으로 터질지 무척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2장의 시작과 동시에 갑작스레 살인사건이 언급되면서 이야기는 급격하게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리고 뒷표지에 실린 카피대로 사랑, , 광기가 복잡하게 얽힌 살인 미스터리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에는 세 가지 사랑이 등장합니다.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여리고 설렘 가득한 감정이 하나이고, 겉으론 밝고 따뜻해 보이지만 실은 완벽하게 위장된 치명적인 덫으로서의 감정이 또 하나이고,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통제 불가능한 광기에 이르고 만 집념에 가까운 끔찍한 감정이 나머지 하나입니다. 사랑에 빠진 누군가는 오늘에 감사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잠 못 이루지만, 덫을 놓은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광기 어린 사랑을 요구하는 누군가는 그저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한 채 방해가 되는 타인에게 잔인한 상처까지 남겨가며 돌직구처럼 폭주합니다.

 

연애소설의 탈을 쓴 충격적인 심리 미스터리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홍보카피인데, 사랑과 덫과 광기로 얽힌 세 남녀가 연애소설과 심리 미스터리를 거쳐 결국엔 살인극에 얽혀 들어가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한 줄로 잘 압축해놓은 문구라는 생각입니다.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짓말쟁이 너에게라는 아주 길고 미묘한 제목 역시 다 읽고 나면 새삼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적절한 제목인데,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사람들은 누구일지, ‘거짓말쟁이 너는 누구일지, 또 이 제목의 화자가 거짓말쟁이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지를 염두에 두고 찬찬히 페이지를 넘긴다면 이 작품의 매력을 한층 더 진하게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재미있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촘촘하게 담긴 건 맞지만, 다소 그 맥락과 동기가 이해되지 않는 억지스런 살인사건은 이 작품의 유일한 아쉬움이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덫과 광기가 한데 섞인 탓에 벌어진 필연적인 참극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 때문에 ?”라는 의문과 함께 막판 엔딩에서 잠시 몰입도가 확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이 딱 1장까지만 언급하고 있어서 그 뒤의 자세한 줄거리를 서평에서 다루기 어렵다보니 아주 애매한 인상비평이 되고 말았는데, 그만큼 이 작품은 다른 독자의 서평이나 정보 없이 백지상태에서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과는 전혀 결이 다르긴 하지만 사토 세이난에게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도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동학대라는 소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꽤 독특하고 개성 있는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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