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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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게르 브론은 FBI의 심리기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탁월한 헤드헌터. 그러나 그는 고객의 집에 보관된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절도범이기도 하다. 화랑을 운영하는 아내의 추천으로 만난 GPS 전문가 클라스 그레베를 라이벌 회사 CEO로 추천하고 고액의 수수료를 받아낼 심산이던 로게르는 동시에 그가 소유한 엄청난 가치의 명화를 훔쳐 거액을 챙기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마지막 한탕에서 모든 일이 어긋나버린다. 장물을 다루던 공범은 죽고 사랑하던 아내는 자신을 완벽하게 배신하고 만 것. 충격에 빠진 로게르는 클라스 그레베의 CEO 추천을 취소하는데, 그 직후 로게르는 GPS 전문가이자 전직 특수부대원이자 진짜 사람 사냥꾼인 헤드헌터클라스 그레베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요 네스뵈의 작품이란 이유만으로 구매했지만 왠지 좀처럼 손이 잘 가지 않아 꽤 오랫동안 책장에 방치해둔 헤드헌터를 읽었습니다. ‘해리 홀레 시리즈이전에 집필된 요 네스뵈의 초기작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검색해보니 스노우맨’(해리 홀레 7)레오파드’(해리 홀레 8) 사이인 2008년에 출간된 작품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요 네스뵈가 스릴러 작가로서 정점에 올라선 뒤에 집필했다는 뜻인데, 그래선지 이 작품이 상대적으로 덜 유명세를 탄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로게르 브론은 낮에는 최고의 헤드헌터로, 밤에는 미술품 절도범으로 변신하는 지극히 속물적인 인간입니다. 업계 에이스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능력 덕분에 많은 돈을 벌지만 그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합니다. 터무니없는 고가의 저택을 유지해야 되고,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매력적인 아내에게 헌신하기 위해 고급 화랑을 열어주고 고가의 보석선물을 사들여야 하는 그에겐 헤드헌터의 월급은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세련된 비주얼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엘리트이자 동시에 허세 충만한 탐욕덩어리 절도범이라는 이중적인 인물인데, 그런 그가 마지막 한탕으로 삼은 루벤스의 명화가 결국 그의 발목을 아주 심하게 붙잡고 마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내의 배신과 공범의 죽음에 이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상황에 놓인 로게르는 불과 만 이틀 동안 극한의 롤러코스터에 휩싸입니다. 헤드헌터로서도, 절도범으로서도 완벽하게 처신해온 그가 하루아침에 최악의 막장으로 급전직하하는 대목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그와 함께 추락하는 듯한 공포심과 무력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살인범의 누명까지 뒤집어 쓴 로게르가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 끝에 진실을 알아내고 모든 것을 바로잡는 이야기는 36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반전과 충격으로 꽉 차 있습니다.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라는 독자의 예상과 추측은 번번이 빗나가고, 이야기 자체가 무질서한 분열과 증식을 반복하는 세포처럼 제멋대로 방향을 뒤트는 느낌을 수시로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기막힌 반전 쇼를 지켜보며 요 네스뵈가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맥베스’, ‘아들’, ‘오슬로 시리즈등 요 네스뵈의 스탠드얼론은 해리 홀레 시리즈와는 색다른 매력과 맛을 전해주곤 했는데, 뒤늦게 읽은 헤드헌터는 어느 작품들과도 차별화되는 엄청 빠르고 엄청 팽팽한 스릴러의 미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요 네스뵈가 매 작품마다 유독 천착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로게르의 히스토리에도 예외 없이 꽤 자주 등장해서 속도감과 재미를 반감시키긴 했지만 그래도 이 작품의 장점에 비하면 충분히 눈감아줄 수 있는 아쉬움이라는 생각입니다.

해리 홀레를 비롯 대체로 진지하고 무거운 요 네스뵈의 기존 주인공들과는 거의 정반대의 캐릭터를 지닌 주인공을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특별한 간식처럼 읽힐 헤드헌터를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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