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복수 발터 풀라스키 형사 시리즈 1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단숨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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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 정신과 병원에서 19세의 나타샤 좀머가 사체로 발견됩니다. 50대 노형사 발터 풀라스키는 현장에서 타살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상부에선 그의 주장을 외면합니다. 그의 업무는 현장 출동 및 확인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쇄살인의 여지까지 엿보이자 발터 풀라스키는 상부의 지시와 무관하게 단독 수사를 감행합니다.

한편, 오스트리아 빈의 유능한 변호사 에블린 마이어스는 우연히 상류층 남성들의 연이은 죽음에 미지의 젊은 여성이 연루됐음을 눈치 챕니다. 돈이 되는 사건만을 강요하는 로펌의 지시를 거부한 에블린은 휴가를 내고 북독일까지 달려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 애씁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노형사 발터 풀라스키와 조우하게 됩니다.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대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천재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와 비교하면 50대 노형사 발터 풀라스키는 나이든 스펙이든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인물입니다. 5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어린 딸 야스민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한직이나 다름없는 라이프치히 경찰서의 현장출동팀에 자원한 그는 과거엔 주립 범죄수사국의 유능한 형사였지만 지금은 그저 범죄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해서 보고서를 쓰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천식에 시달리는 50대의 무력한 형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진력과 추리력에 관한 한 풀라스키는 조금도 마르틴 S. 슈나이더에 뒤지지 않습니다. 열악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저돌적으로 수사를 감행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마르틴 S. 슈나이더가 안락탐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 풀라스키와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과 비중을 나눠가진 에블린 마이어스는 오스트리아의 거대 로펌의 변호사로 그 유능함을 공인받고 있는 30대 여성입니다. 하지만 형사사건 전문변호사를 꿈꾸는 그녀에겐 돈이 되는 대형 고객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고달플 따름입니다. 어느 날 자신이 맡았던 전형적인 사고사를 조사하던 중 뜻하지 않게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녀는 남친이자 사립탐정인 파트릭의 도움을 받아가며 독일까지 달려가 수사에 임합니다. 그야말로 변호사인지 형사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맹활약을 펼치는데, 마르틴 S. 슈나이더의 파트너이자 정의감과 에너지가 넘치는 신참 형사 자비네 네메즈를 떠올리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독일의 풀라스키와 오스트리아의 에블린은 한 몸통이나 다름없는 사건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캐나가다가 극적으로 조우합니다. 그들이 마주한 사건은 소아성애, 마약, 살인 등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로 뒤범벅돼있어서 수사 과정 자체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각자 다른 이유로 유달리 사건에 감정을 이입하곤 합니다. 풀라스키의 경우 12살인 딸 야스민 때문이고, 에블린의 경우 과거 자신과 가족을 파멸시킨 참혹한 사건 때문인데, 자신들이 쫓는 범인이 10년 전 10대 소년소녀들을 잔인하게 유린한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보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돌직구처럼 진실 찾기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건의 윤곽이라든가 풀라스키와 에블린의 수사가 접점을 이룰 지점, 그리고 범인의 살해동기 등 전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이야기가 전개돼서 슈나이더 시리즈만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힘은 부족해 보입니다. 하지만 성실하고 진지한데다 자신들의 처지 때문에 사건에 감정이입을 주저하지 않는 두 주인공의 행보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스릴러의 하이라이트인 막판 클라이맥스의 액션 장면은 노형사와 젊은 변호사라는 조합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적절한 폭력성과 긴장감을 갖췄고, 베일 속의 진범이 드러나는 반전 역시 나름의 힘과 충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름의 복수발터 풀라스키 시리즈의 첫 편인데, 이 작품만 놓고 보면 발터 풀라스키 & 에블린 마이어스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두 주인공의 분량과 비중은 막상막하입니다. 후속작인 가을의 복수는 꽤 오래 전에 읽어서 사건도 줄거리도 가물가물하지만 언뜻 에블린이 이 작품만큼 큰 비중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아쉬운 건 여름의 복수가을의 복수’(2017) 이후 한국에는 더는 발터 풀라스키 시리즈가 소개되지 않은 점인데(‘슈나이더 시리즈역시 201812죽음의 론도이후 소식이 없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노형사 발터 풀라스키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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