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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평점 :
한 사람의 운명이란 거짓말 같은 우연과 필연으로 인해 희비극이 엇갈리기도 하고, 사소한 계기 하나 때문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그 방향이 정반대로 뒤바뀌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엇갈림’과 ‘뒤바뀜’이란 게 그저 한 개인의 희로애락만 쥐락펴락하다가 소멸되기도 하지만, 때로는(특히 시대가 사람을 뒤흔드는 혼란기에는) 다음 세대의 행과 불행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아리랑’, 그리고 이 작품의 조상(?) 격인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Roots)’처럼 장구한 시간과 여러 세대에 걸친 비극적인 대서사를 담은 작품들은 남다른 여운을 남길 수밖에 없는데, 특히 ‘밤불의 딸들’은 서아프리카에서 노예 포획과 매매가 자행되던 17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300년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무려 일곱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첫 페이지를 열기 전부터 묵직한 비극의 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아프리카 황금해안(지금의 가나)에서 태어난 에피아와 에시는 아버지가 다른 자매지만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맞댄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우여곡절 끝에 영국 총독의 아내가 되어 성의 위층에 살았던 에피아와 그 성의 지하에 있는 여자포로 감옥에 갇힌 채 노예로 팔려나갈 날만을 기다리던 에시가 아주 잠시나마 지척의 거리에 머물렀던 순간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긴 세월동안 두 여성의 후손들은 각각 미국과 가나에서 생과 사를 거듭하며 고통과 상처로 점철된 지난한 인생을 겪게 됩니다.
가나에 남은 에피아의 후손들은 같은 인종을 백인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잔인한 가업을 물려받거나 그 가업에서 벗어나더라도 ‘불의 저주’라는 끔찍한 덫을 피하지 못한 채 대를 이어 현재에 이릅니다. 그들은 가난과 흉작, 기아와 질병, 백인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결코 멈추지 않는 참극들을 거치면서 유럽과 미국으로 팔려간 노예 못잖은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한편, 에시의 후예들은 미국 남부의 목화밭, 탄광, 항구 등에서 짐승만도 못한 노예로 전락했고, 남북전쟁 전후로 자유의 몸이 된 후에도 ‘도망노예 송환법’, ‘죄수 대여제도’ 등 갖가지 악법과 악습으로 인해 진정한 자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됩니다. 에시가 미국에 팔려온 지 2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그녀의 후손들의 질곡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에피아와 에시를 포함하여 각각 일곱 세대, 즉 14명의 인물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는데, 본 내용이 444페이지에서 마무리됐으니 한 인물당 평균 30여 페이지가 할당됐다는 뜻입니다. 이야기의 규모나 서사의 두께에 비하면 한 인물의 삶을 그리기엔 너무나 부족해 보이는 분량이지만, 작가는 각 인물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과 사건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그 비극성을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10대에 자식을 낳고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는 목전의 죽음을 극복하긴 했지만 결국 고통스런 장수를 누려야 했습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비극적인 정점을 응축한 30여 페이지의 챕터들은 분량과 무관하게 매번 독자의 가슴에 무거운 돌 하나를 얹어놓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조상들의 고통스런 시간과 삶이 축적된 결과물, 즉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소소한 안도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마지막 챕터의 주인공인 마조리(에피아의 후손)와 마커스(에시의 후손)가 우연이지만 실은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것도, 또 그들의 조상인 에피아와 에시의 흔적을 찾아 서아프리카 황금해안을 함께 찾은 일도 다분히 허구적인 판타지이긴 하지만 3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마치 에피아-에시 자매가 다시 만난 것처럼 울컥한 느낌을 맛보게 되는 것은 비단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흑인, 노예, 아프리카, 미국 등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지만, 시대를 거스를 수 없었던 개인의 비극이 대를 이어가며 이리저리 변주되는 과정들은 충분히 보편적인 공감과 공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딱 이만큼의 분량이 더 있었더라면...”이란 유일한 아쉬움을 제외하곤 깊은 인상과 여운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한국에서도 꽤 호응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새삼 앞서 언급한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아리랑’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비극적인 대서사들만이 발휘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과 매력에 대한 갈증이 ‘밤불의 딸들’로 인해 갑작스레 도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