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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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는 이른바 하영 연대기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1부인 잘 자요, 엄마2010년에 출간됐으니 무려 11년 만인 셈인데, 원래 잘 자요, 엄마는 완결된 이야기였지만 개정판(2018) 준비 과정에서 시리즈 구상이 이뤄졌고, 그로부터 거의 3년 만인 2021년 봄에 하영의 두 번째 이야기가 독자들 앞에 선을 보인 것입니다.

 

이 작품의 내용이라든가 주인공 하영과 의붓엄마 선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잘 자요, 엄마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스포일러가 될 여지가 너무 많아서 서평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참 난감한 게 사실입니다. 다만, 출판사가 공개한 선에서 잘 자요, 엄마의 내용을 포함하여 간략하게만 정리해보면...

 

희대의 연쇄살인범 이병도의 면담을 맡게 된 덕분에 신경이 예민해져있던 범죄심리학자 선경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데려온 전처의 11살 딸 하영을 맡게 되면서 안팎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됩니다. 평범한 소녀가 아닌 하영의 존재는 선경에게 공포심마저 갖게 만듭니다. 결국 하영-선경-이병도가 극적으로 갈등하고 충돌한 끝에 사건은 끔찍하게 마무리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소시오패스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번에는 5년이 지난, 즉 극도로 예민한 나이에 이른 16살의 하영을 통해 완성 직전의 소시오패스가 겪게 되는 내적 갈등과 딜레마를 그리고 있습니다.

 

선경은 5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자신을 아줌마라고 부르는 하영과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남편이 갑작스레 꺼내든 강릉으로의 이사와 전학 문제로 신경이 곤두섭니다. 안 그래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날이 서있던 하영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정작 강릉으로 이사한 뒤엔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다시금 피어오르는 소시오패스의 본능으로 인해 누구보다 잘 적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전학한 학교에서 벌어진 집단 괴롭힘과 실종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합니다.

 

잘 자요, 엄마11살 하영이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맹아기의 소시오패스였다면, 16살의 하영은 또 다른 자신의 자아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충돌하며 갈등하는 성장기 소시오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 계속 자신을 괴롭힐 것 같아서 뱀의 머리를 짓이기고 칼로 잘라내는 섬뜩한 면모를 갖고 있지만, 스스로의 폭발을 가까스로 제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성 역시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아줌마선경에 대한 양가적 감정, 텅 빈 채 남아있는 유년의 기억들은 하영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만듭니다. 거기에 전학한 학교에서 마주한 실종사건까지 끼어들면서 하영의 몸과 마음은 지켜보는 독자마저 불안해질 정도로 지독한 혼란에 빠져들고 맙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하영은 미스터리 해결사로서의 매력적인 모습을 특별한 간식처럼 내놓기도 합니다.

 

제목대로 이 작품에는 여러 사람들의 비밀이 등장합니다. 전작에서 하영과 선경만이 공유하게 된 이병도 사건의 비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거나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하영의 유년기의 비밀, 강릉으로의 이사를 강행한 남편의 비밀, 그리고 하영이 전학한 학교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의 비밀이 그것들입니다. 각각의 비밀은 서로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영을 중심으로 내밀하게 연결돼있어서 어느 하나라도 폭발하는 순간 하영의 의지와 감정에 따라 도미노처럼 연이어 폭발하게 되는 파괴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 비밀이 먼저 터질까, 그것의 후폭풍은 어디에 먼저 불똥을 떨어뜨릴까, 독자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중반까지만 해도 가족에게 닥친 불온한 기운을 그린 심리스릴러에 가까워서 전작인 잘 자요, 엄마를 안 읽은 독자라면 다소 모호하게 읽힐 여지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작가가 이런저런 부연설명들을 달아놓긴 했지만 잘 자요, 엄마의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되기 때문에 전작을 안 읽은 독자에겐 그야말로 감질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 작품에는 잘 자요, 엄마의 엔딩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대반전이 숨어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의 진가를 맛보려면 어쩔 수 없이 잘 자요, 엄마가 선행필수라는 뜻입니다.

 

본 내용이 373페이지에서 끝나는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너무나도 짧은 분량입니다. 기초공사나 다름없는 초반부 심리스릴러 서사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남은 페이지를 확인하곤 때 이른 아쉬움부터 든 게 사실인데, 다 읽은 뒤에 다시 생각해봐도 적어도 100페이지 정도는 더 있었어야 16살 소시오패스 하영의 비밀과 갈등과 폭발이 제대로 그려졌을 거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373페이지에 실린 이야기들이 조금도 빈틈없고 정교하게 직조된 건 맞지만, 읽고 싶은 내용들이 한참 많이 남은 상태에서 마지막 장을 향해 속절없이 줄어드는 페이지는 말 그대로 아쉬움 그 자체였습니다.

 

하영 연대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서 하영이 얼마만큼 성장한 상태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완성된 소시오패스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하게 됩니다. 충격적인 떡밥까지 제공되진 않았지만 충분히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 만한 엔딩이 그려졌는데, 그저 바람이라면 하영과 선경의 마지막 이야기를 만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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