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케이스릴러
고도원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사형 판결을 앞둔 희대의 연쇄살인범, 염석희. 그녀가 저지른 17건의 살인 자백을 유도하는 범죄심리 전문가, 심수영. 구치소 안에서 마지막 살인 계획을 세우는 석희와 그녀의 무모한 계획을 막아야 하는 수영의 숨 막히는 심리 대결. 두 여자의 목숨을 건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은 대략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구도와 적잖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라 제대로 소개하려면 한도 끝도 없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다 읽은 뒤 다시 보니 너무 빈약한 탓에 오히려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물론 실제 작품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먼 엉뚱한 소개글처럼 보인 게 사실입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는 선에서 조금만 더 소개를 해보면...

 

체포된 이후 내내 진술을 거부하던 연쇄살인범 염석희는 심리상담사 심수영에게 기괴한 제안을 합니다. 자신이 낸 문제를 풀면 그간의 살인사건에 대해 진술하겠다는 것입니다. 애초 염석희의 상담을 맡게 된 과정도 석연치 않았지만 심수영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상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심지어 염석희 사건에 자신의 딸 영지까지 휘말리는 사태에 이르자 심수영은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영지를 구하기 위해 사건의 한복판에 뛰어든 심수영은 염석희가 저지른 17건의 살인사건의 실체와 그녀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궁극의 목표를 깨닫곤 큰 충격을 받습니다.

 

10대 때 저지른 첫 살인부터 염석희의 단 하나의 살인 동기는 복수입니다. 평균 1년에 두 건 정도의 살인을 저지른 셈인데, 그만큼 완벽하고 정교한 계획에 의해 차근차근 복수를 진행시켜왔다는 뜻입니다. 염석희는 구치소에 갇힌 상태에서도 18번째 목표물을 향한 살인계획을 빈틈없이 진행시킵니다. 그녀의 복수심은 그만큼 강렬하고 집요하다는 뜻입니다.

 

난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 그러다 의외로 내가 그 잘못된 일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지. 나 같은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일을. 괴물사냥. 괴물은 괴물이 잡아야지.” (p233)

 

두 주인공의 캐릭터도 독특하고, 살인사건의 구도도 여러 가지 면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적 복수 코드가 깔려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악의 집단은 사악함과 잔인함으로 똘똘 뭉친데다 뛰어난 지능과 폭력을 동원하여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이익을 공고히 구축해왔습니다. 그에 맞서는 두 주인공 염석희와 심수영은 한편으론 적대적인 관계지만 한편으론 악의 집단에 맞서기 위한 위태로운 협력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녀들의 여정은 온갖 위기와 피비린내를 넘어 가까스로 결말에 다다르긴 하지만, 막판에 드러난 진실은 그저 무참할 따름입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하면 악을 향한 복수극이지만,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도 워낙 많고 그들 각자의 사연도 천차만별에 모호함 투성이라 읽는 동안 이야기 구도 전체가 한 눈에 쉽게 들어오진 않습니다. 대부분 중반 이후에나 독자에게 공개되는 각 인물들의 과거와 사연들은 그 전까지는 계속 ?”라는 의문만 자아내서 몰입에 꽤나 방해가 됐다는 생각입니다.

 

그와 함께 다소 불친절하고 겉멋에 치중한 듯한 작가의 멋부림은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쉽게 느껴진 부분이었습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 하기 위한 억지스런 설정들, 리얼리티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과도하고 비현실적으로 강조된 스케일과 화려함, “?”라는 궁금함을 제 때 풀어주지 않고 혼자서만 진격하는 듯한 작가의 독주 등이 그것인데, 나름 복잡한 설정과 인물들을 큰 오차 없이 설계한 건 분명한 장점이긴 하지만, 그에 못잖게 허술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대목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 읽은 뒤 곰곰이 생각해보면 굳이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가 없어 보인 염석희의 복수극도,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린 심수영의 기구한 사연도 숲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나무들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식의 느낌을 받게 된 건 그런 이유들 때문으로 보입니다.

 

출판사가 줄거리 소개를 극도로 아낀 탓에 내용보다는 모호한 인상비평에 가까운 서평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중반까지 누린 기대감과 만족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기교나 스케일보다 디테일과 리얼리티에 좀더 주력한다면 고도원의 다음 작품은 한국 스릴러의 새로운 기대주라는 호칭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필력에 관한 한 그런 기대를 가져도 충분하다는 확신을 작품 곳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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