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엔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1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1959년 뉴욕. 사립탐정 해리 엔젤은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는 재력가 루이 사이퍼로부터 10여 년쯤 스타덤에 올랐다가 전쟁 중 부상으로 장기입원 중인 가수 자니 페이버릿의 근황을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처음엔 그저 그런 안부 확인 차원의 의뢰라고 여겼지만 자니가 오래 전에 병원에서 사라진 상태였고 그를 담당했던 의사는 뭔가를 감추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엔젤은 의구심을 품습니다. 그때부터 자니의 흔적을 찾는 엔젤의 집요한 탐문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자니의 과거를 파고들수록 부두교, 악마숭배, 마법 등 기괴한 단서들이 연이어 발견된다는 점. 그리고 그보다 엔젤을 더욱 큰 충격에 빠뜨린 건 그가 탐문 과정에서 만났던 인물들이 마치 악마의 의식과도 같은 방법으로 잔혹하게 살해된다는 점입니다.

 

읽는 건 몰라도 오컬트 호러를 영상으로 보는 건 기피하던 저였지만 이 작품을 원작 삼아 제작된 영화 엔젤 하트를 본 건 순전히 배우 미키 루크 때문이었습니다. 좀 무서운 영화라는 걸 알고 봤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끔찍한 영상들과 마주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대부분 기억에서 날아갔고 일부 그로테스크한 앵글들만 아른거리는 가운데 절대 잊지 못할 장면 하나가 있는데, 그건 바로 육체에서 분리된 상태에서도 열심히 피를 내뿜으며 뛰고 있는 인간의 심장을 클로즈업 한 장면입니다.

엔젤 하트의 원작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우연히 인터넷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이 작품을 발견하곤 무슨 이유에선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넣었던 건데, 막상 사놓고 꽤 오래 뜸을 들였던 건 역시나 오컬트 호러의 후유증을 두려워한 소심함 때문이었습니다.

 

뉴욕의 사립탐정 해리 엔젤은 냉소와 자만과 겉멋으로 똘똘 뭉친 이른바 전형적인 영미권 하드보일드 탐정 캐릭터입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여권을 가졌지만 국적은 불분명한데다 이름부터 수상한 의뢰인 루이 사이퍼(Louis Cyphre)를 만난 이후 그의 탐정으로서의 행보는 초중반까지만 해도 좀 가벼워 보이는 필립 말로처럼 보였고, 제가 기억하는 영화 엔젤 하트의 분위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느낌이라 당황하기까지 했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엑소시스트를 썼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소설이 딱 그렇습니다.”라는 스티븐 킹의 평은 이 작품 속에 기묘하게 섞여있는 하드보일드 탐정 서사와와 오컬트 호러 코드를 한마디로 잘 압축하고 있는데, 어쨌든 좀 가벼워 보이는 필립 말로로 출발한 이야기는 조금씩 끔찍한 악마가 날뛰는 지옥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뉴욕 탐정지극히 비현실적인 악마의 주술이 어떻게 접점을 가지게 될까, 무척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작가는 자니 페이버릿의 행방을 쫓는 해리 엔젤의 발자취 속에 그 접점의 단서들을 아주 조금씩 풀어놓음으로써 이질감이나 위화감을 느낄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물론 자니 페이버릿 주위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부두교나 악마숭배에 빠져있는 설정은 조금은 이상해 보이기도 했지만 뒤에 가면 그런 설정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 적절한 타이밍에 터지는 엽기적인 살인사건들(눈에 총을 맞고, 성기가 입과 기도를 막고, 심장이 몸에서 분리되고...)은 한편으론 해리 엔젤이 현실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걸 상기시키면서도 한편으론 그 수법이 너무나도 악마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데, 이런 장면들 역시 독자로 하여금 섞이기 힘든 두 장르의 교묘한 합체를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꽤 놀라긴 했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였는데, 책으로 다시 접한 반전은 놀랍고 충격적이긴 해도 뒤통수를 세게 두들겨 맞았다는 느낌까진 받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마치 분량에 쫓겨 허겁지겁 마무리한 듯한, , 뭔가 설명하다 만 것 같은, 그래서 굉장히 애매모호해서 이런저런 상상과 추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반전이랄까요?

어쩔 수 없이 저의 상상과 추정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스포일러 게시물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는데, 저의 무지함 또는 지나치게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 탓에 뭔가를 놓친 게 아니라면 해리 엔젤이 맞이한 반전과 엔딩에 대해 적어도 20~30페이지 정도는 친절한 설명이 추가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게 사실입니다.

 

이런저런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작품을 읽은 덕분에 영화로 만들어진 엔젤 하트를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비록 영상으로 제작된 호러물에 여전히 두려움을 갖고 있는 소심한 1인이지만, 좀더 간결하고 선명하게 해리 엔젤의 이야기를 맛보고 싶은데다 가물가물하긴 해도 압도적으로 느껴졌던 그로테스크한 앵글의 묘미도 다시 한 번 만끽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때 푹 빠졌던 미키 루크의 리즈 시절을 즐기고 싶은 욕심 역시 한몫 거들고 있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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