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모스는 인적 없는 사막에서 무자비한 총격을 받은 차량과 시체들을 우연히 발견합니다. 현장에 있던 대량의 마약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200만 달러가 넘는 현금을 훔쳐 달아난 모스는 그 순간 이후로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맙니다. 돈의 주인과 마약조직은 물론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 안톤 시거까지 가세하여 모스를 뒤쫓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회한 보안관 벨은 도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살인극에 그저 무기력한 행보만 보일 뿐입니다.

 

워낙 여러 번 들어본 제목인데다 한때 무척 좋아했던 코엔 형제가 영화로 만들었던 작품이라 언젠가는 꼭 읽어보겠다는 생각만 하면서도 내내 책장에 방치해온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리 길게 서평을 쓰게 될 것 같진 않은데, 기대에 비해 실망감이 컸던 탓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취향과 거리가 너무 멀었던 탓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돈 가방을 들고 튄 모스와 그를 쫓는 지독한 살인마 안톤 시거의 추격전이고, 또 하나는 추격전 챕터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노회한 보안관 벨의 회고입니다.

모스와 시거의 추격전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살육극을 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척이나 건조하고 삭막하게 읽힙니다. 대사와 지문이 뒤섞인 채 감정 같은 건 조금도 실리지 않은 기계적인 문장들과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자아내는 이상한 상황들, 즉 한쪽은 무작정 도망치고 한쪽은 무작정 뒤쫓는, 도무지 목적을 알 수 없는 추격전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훔친 이유도, 그걸 갖고 뭘 하겠다는 욕망도 없는 도망자와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건지, 아니면 도망자에게 무슨 악감정이 있는지도 모를 추격자의 행보는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그에 반해 노회한 보안관 벨의 회고에는 본인 외에는 무엇을, 왜 회고하는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이야기들이 전개되는데, 회고가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모스와 시거의 추격전에 맞닿아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도망자 모스, 추격자 시거, 보안관 벨 등 세 주인공의 난해한 행보들은 작가의 불친절한 문장과 플롯으로 인해 더 난해해질 따름입니다. 기승전결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고, 딱히 고발이나 상징의 흔적들이 엿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오죽하면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래서 뭐?”라는 어이없는 자문밖엔 할 수 없었는데 서평을 쓰기 전에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저의 자문이 그리 드문 반응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작품이 끝나고도 물음은 계속된다. 그 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아주 능숙하고 냉철한 독자만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작품을 읽는 진정한 재미도 오롯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납득하기 힘든 출판사의 소개글도, 작가와 이 작품에 쏟아진 엄청난 찬사들도 하나같이 저에게 능숙하지도, 냉철하지도 못한 무식한 독자!”라는 비난을 보내는 것만 같았는데, 제가 미처 몰라본 이 작품의 진가라는 게 정말 있는 건가 싶어, 여기저기 찾아보니 의외로 80년대 미국의 상황이라든가 신자유주의 등 생각지도 못한 코드들에 대한 언급들이 많았습니다.

모스와 시거와 벨이 당시 특정 계층, 특정 사고방식을 대변하고 상징한다는 의견들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론 이런 평가는 흥미로운 스릴러를 즐기려는 일반독자들에겐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서평을 위한 서평, 분석을 위한 분석으로밖엔 보이지 않는 억지 주장이라고 할까요? 이야기도, 캐릭터도, 사건도 뒤늦게나마 ,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라고 공감할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어느 독자의 서평처럼 이 작품은 오히려 코엔 형제의 영화로 만난다면 그 의미와 매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우들의 표정이라도 보고 있으면 적어도 ?”라는 무의미한 자문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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