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몬 부티크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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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 또는 불명예라는 딱지가 붙은 멤버들이 모인 하서경찰서 표적수사대’.

유일하게 그 딱지에서 자유로운 경위 민재경은 대원들과 함께 팀장 정두현의 지휘 아래

7년에 걸쳐 여러 명의 희생자가 나온 수험생 연쇄살인사건을 수사 중입니다.

그런데 재경은 두현을 통해 이해 불가능한 괴짜 인물을 소개받습니다.

일말의 체취만으로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포착해내는 뛰어난 후각의 남자 남타신은

두현으로부터 오래 전부터 수사에 도움을 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내내 거절해왔는데,

그런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표적수사대에 도움을 주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온갖 재수 없음의 총집합체인 남타신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재경은

그의 뛰어난 능력을 직접 체험하곤 인내심을 발휘하여 파트너로 받아들입니다.

또 그가 갑자기 수사에 도움을 주기로 한 이유가 자신 때문임을 알곤 깜짝 놀랍니다.

 

고백하자면, ‘페로몬 부티크는 한 번 중도포기했던 작품입니다.

100페이지도 채 못 가 책장을 덮었던 가장 큰 이유는 현실감 없는 멋부림이었는데,

황당하기만 했던 재경과 타신의 첫 만남 에피소드에서 바로 질려버렸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능가하는 후각을 지닌데다 VVIP급 고객을 거느린 향수 전문가인 남타신은

비뚤어지고 뒤틀린 성격에 막말과 안하무인이 몸에 밴 인물인데,

그와 재경과의 첫 만남부터 어이없는 판타지 로맨스 같은 장면이 펼쳐진 탓에

그 뒤의 연쇄살인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찌어찌 다시 연이 닿아 결국 마지막 장까지 읽게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습니다.

사건도, 캐릭터도, 범인의 정체와 동기도 무엇 하나 자연스럽게 따라가지지 않았고,

이야기는 화려하고 복잡하긴 한데 산만하기만 할 뿐 중심이 잡히지 않아 보였습니다.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죄다 어떤 식으로든 연쇄살인과 엮여 있는데

필연적인 경우도 있지만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우연인 경우도 있습니다.

, 소위 찌질이들을 갖다 모아놓은 표적수사대라는 곳은

고위간부 한 사람의 입김만으로도 쉽게 해체시켜버릴 만한 만만한 곳처럼 그려졌지만

정작 훨씬 더 강력한 권력을 지닌 자들조차 무슨 이유에선지 쉽게 손대지 못합니다.

7년을 끌어온 사건인데 유력한 용의자는 어느 날 갑자기 으로 수사선상에 떠올랐고,

범인은 즉시 제거했어야 할 피해자들을 별 이유도 없이 7년 동안 질질 끌며 처리해왔습니다.

재경과 타신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끌려가는 이미지가 더 강했고

어설픈 티격태격 로코의 뒤끝은 조금도 예쁘지도, 흥분되지도 않았습니다.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도 복잡다단한데다 스포일러가 될 대목들이 많아서

내용 소개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인상비평에 가까운 혹평만 하게 됐는데,

대중적이고 말초적인 재미는 분명 여러 곳에서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미스터리도, 로맨스도 여기저기 산만하게 씨앗들만 잔뜩 뿌려놓았을 뿐

무엇 하나 제대로 회수되지 못한 채 어중간한 엔딩을 맞이한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강지영을 처음 만난 건 개들이 식사할 시간이라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단편집이었는데,

그 뒤로 만난 살인자의 쇼핑몰’, ‘심여사는 킬러는 대중적 재미와 안정적 구도는 갖췄더라도

개들이 식사할 시간의 강렬한 개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라 다소 아쉬웠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페로몬 부티크는 한 가지 매력이라도 딱히 손꼽기 어려웠던 것은 물론

강지영의 장점과 필력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던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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