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유리코는 혼자가 되었다
기도 소타 지음, 부윤아 옮김 / 해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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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명문 유리가하라 고등학교 신입생 야사카 유리코는 기이한 학교 전설을 듣는다.

대대로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유리코 님이 되어 절대 권력을 갖게 되고,

그 권력에 거역하는 학생에겐 반드시 치명적인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

한자 표기도 상관없고 학년의 제약도 없다. 그저 이름이 유리코라면 자격을 갖게 된다.

, ‘유리코 님이 될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뿐이다.

전교에 유리코가 여럿이라면 나머지는 전학, 퇴학, 사건, 사고 등 어떤 식으로든 도태된다.

현재 학교엔 야사카를 포함한 신입생 4명과 전임 유리코 님등 모두 5명의 유리코가 있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학교괴담, 도시전설, 연쇄살인과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가 믹스된 독특한 작품입니다.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를 지배하는 유리코 님의 후보가 되며,

마치 신탁(神託)이 작동하듯 부적절한 유리코들이 도태된 뒤 남는 마지막 한 사람이

새로운 유리코들이 들어올 때까지 유리코 님의 지위를 유지하며 학교를 지배한다는,

미스터리보다는 으스스한 괴담이나 전설에 가까운 소재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야사카 유리코는 전혀 유리코 님이 될 마음이 없는 고교 신입생입니다.

하지만 유리코 님에게 거역하는 학생들이 불행에 빠지거나 학교에서 퇴출된다는 전설은

지독한 따돌림의 고통에 빠져있는 야사카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유리코 님이 될 수만 있다면 현재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사카는 누군가의 불행을 제물삼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대해

생래적인 거부감을 가진 여리고 유약한 소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한편, 야사카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친구는 시마쿠라 미즈키.

또래답지 않은 냉철함과 예리함을 지닌 미즈키는 유리코 님전설을 미신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야사카가 유리코 님의 힘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일 자체를 말리지도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유리코 님 후보들이 차례로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자

미즈키는 그것이 미신 또는 저주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범행임을 입증하고자 앞장섭니다.

 

사실, ‘유리코 님 전설21세기에는 그 명맥을 유지하기가 힘든 괴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수십 년에 걸친 유리코 님의 저주를 선배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은 물론

그 괴담이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봤던 탓에

누가 됐든 유리코 님에 등극하는 순간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유리코 님의 저주가 집단 따돌림, 입시 스트레스, 차별과 편견 등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마주쳐야 하는 끔찍한 현실의 도피처 역할도 종종 맡아왔기에

전설과 괴담의 힘은 학생들 사이에서 해가 거듭될수록 더 큰 위력을 갖게 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야사카와 미즈키가 마주한 유리코 님의 저주는 예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의 저주는 고작해야 사고로 인한 부상이 가장 심한 경우였는데,

신입생인 그들이 목격한 유리코 님의 저주는 전례 없는 끔찍한 연쇄살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리코 님 후보들이 차례로 살해당하자 야사카 역시 극도의 두려움에 빠지는데,

경찰 수사마저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즈키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아무래도 10대 고교생이 명탐정 역을 맡은데다 사건 무대가 학교이다 보니

특별히 새로운 트릭이나 놀라운 설정이 등장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부 트릭은 고전적인 본격 미스터리의 향기까지 풍기고 있어서

이 작품의 배경이 현대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괴담 혹은 전설을 연쇄살인과 매끄럽게 결부시킨 작가의 필력은 눈에 띄었는데

그래선지 큰 위화감 없이 흥미롭게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진실이 드러나고도 꽤 많은 분량이 남아서 얼마나 많은 반전이 숨어있을까 궁금했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독자의 뒤통수를 친 작가의 정교한 설계는

후속작을 기대해도 좋을 만큼 매력적이고 신선했습니다.

다만, 마지막 반전은 담은 에필로그는 다소 무리해 보였던 게 사실인데,

놀랍긴 해도 어딘가 억지스러운, 그래서 작가의 과욕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앞서 펼쳐놓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막판에 개운치 않게 만든 악수(惡手)라고 할까요?

 

읽는 내내 이 작품을 원작 삼아 제작된 일본 드라마가 생각나곤 했는데,

3월에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일단 1~2회 정도는 꼭 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소설보다는 영상이 이 작품의 매력을 잘 드러내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1989년생인 기도 소타가 다음에 어떤 작품으로 독자를 찾을지도 무척 궁금해졌는데

데뷔 전에 이미 많은 이야기를 쓴 이력이 있다고 하니 기대감이 더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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