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 - 개정판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
키류 미사오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서 중고서적을 검색할 때마다 제목 때문에 자꾸만 눈길이 끌리던 작품이었는데

얼마 전 장바구니를 채워놓고 보니 배송비 무료 혜택까지 딱 2,000원이 남았기에

더는 고민하지 않고 얼른 픽업해버렸습니다.

 

아름답고 교훈적인 동화나 민담이 원래는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세월을 거치면서 위험하고 음란한 부분들이 정제됐다는 건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가령, 친숙하고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실은 소시오패스나 사악한 욕망덩어리였다든지

아름답고 고귀한 주인공들이 실은 음란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든지

또는,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까지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실은 그 뒤에 끔찍하고 추악한 진짜 엔딩을 갖고 있다든지....

고백하자면 이런 상상만으로도 오리지널에 대한 궁금증이 부쩍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아마 이 작품이 내내 제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그 궁금증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인 기류 마사오는 두 명의 작가 - 우에다 가요코, 쓰쓰미 사치코 의 필명입니다.

프랑스 유학파인 두 작가는 특이하게도 유럽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에피소드에 주력했는데

악녀대전’, ‘우아하고 잔혹한 악녀들’, ‘프랑스의 잔혹한 이야기들’, ‘아름다운 고문의 책

집필한 작품 제목만 봐도 그녀들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머리말에 따르면 그림 동화초판의 잔혹하고 거친 표현 방법을 그대로 살리면서

문학, 역사학, 정신분석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의 해석을 참고하고

거기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곁들여 새롭고 생생한 그림 동화를 엮었다고 합니다.

 

시리즈 1편인 이 작품엔 백설공주’, ‘신데렐라’, ‘숲속의 잠자는 공주등 친숙한 동화는 물론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모티브로 삼은 끔찍한 이야기 파란 수염까지 여섯 편이 실려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인공들에게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들이 전개됩니다.

 

백설공주의 경우 근친상간, 비속살해, 난잡하고 문란한 남녀관계, 처절한 복수가 등장해서

오리지널과 동화 사이의 간격이 (전혀 다른 작품인 것처럼) 멀게 느껴졌고,

개구리 왕자님숲속의 잠자는 공주는 일반인들이 익히 아는 엔딩 그 이후의 이야기,

즉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던 주인공들의 뜻밖의 후일담이 그려져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파란 수염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하성란), ‘푸른 수염’(아멜리 노통브),

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제인 니커선) 등 많은 작품에 모티브를 준 오리지널인데

동화라기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공포괴담에 가까운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노간주나무역시 짧은 분량 안에 농도 짙은 호러 판타지가 담긴 작품입니다.

 

해설에 따르면 그림 형제가 활동하던 당시에도 이들의 작품에 대한 비난과 반발이 심했고

그런 탓에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고육지책으로 캐릭터나 사건을 꽤 순화했다고 하는데,

특이한 건 성()에 관계된 설정들은 대폭 삭제된 반면

살인, 고문, 인육 등 잔인한 폭력 장면들은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았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도덕적 잣대의 성격이 어땠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순화되고 삭제된 게 이 정도라면 오리지널에 그려졌던 성적(性的) 설정들이

얼마나 기괴하고 노골적이었는지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흥미 위주의 작품인데다 기대만큼 파격적이지 않았던 탓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그림 동화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무래도 일반독자 입장에선 싼 티 나는 듯한 장난스런 표지 때문에

이 작품을 집어 드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번역본은 일본 원작 표지를 반전만 한 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19판정을 받은 것 역시 독자들의 선입견에 한몫을 한 것 같은데,

대부분 절판 상태라 중고서점에서밖엔 구할 수 없는 상태지만

관심 있는 독자라면 시리즈(모두 세 편) 중 한 편쯤은 장바구니에 넣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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