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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제가 읽은 건 2003년 문예출판사에서 낸 판본이지만 오래전부터 절판 상태라서
부득이하게 현재 판매중인 열린책들 판본에 서평을 올립니다.
다행히 번역가가 같은 분이어서 동일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만, 서평에 인용한 본문과 그것이 수록된 페이지는 문예출판사 판본에 따랐습니다.)
우선 고백할 것은 제목만큼은 여느 고전이나 명작 못잖게 자주 들어봤어도
실제로 읽기 전까지 이 작품이 무슨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포스터 속의 그레고리 펙을 봤던 기억 탓에,
또 제목이 풍기는 심상찮은 뉘앙스 탓에 고전 스파이 스릴러라고 예단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돼 그 예단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 깨달았지만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읽기 전에 상세한 소개글을 찾아보지 않았다는 점인데,
만약 소개글을 봤더라면 “1930년대를 배경으로 인종차별을 고발한 법정 스릴러”라는,
앞서 저지른 터무니없는 예단보다 더 잘못된 기대감을 가졌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는 “미국 남부 앨라바마의 메이콤이란 소도시에서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소신껏 흑인 용의자를 변호하는 이야기”라고 돼있는데,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제대로 대변한 소개글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아니라 그의 딸 진 루이즈 핀치이며
일명 스카웃이라 불린 그 소녀가 7살부터 대략 3년 동안 겪은 다사다난한 사건들과 함께
몸과 마음이 소녀에서 ‘숙녀’로 도약하는 성장물로 보는 게 더 정확한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스카웃은 그 또래답게 천방지축이지만 뚜렷한 소신과 고집을 가진 소녀입니다.
나이답지 않은 똘똘함과 함께 영악한 악동 기질까지 지닌 그녀는
은둔생활 중인 이웃 아서 래들리를 집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오빠 젬과 덫을 놓기도 하고
당돌한 언행으로 흑인 식모 캘퍼니아는 물론 ‘고상한 이웃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근엄하면서도 자식과의 소통을 중요시 여기는 아버지 애티커스 덕분에 올곧게 자라납니다.
그런 그녀는 조금씩 세상의 민낯들과 마주하면서 크고 작은 혼란들을 겪게 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 애티커스는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남을 이야기들을 남겨주곤 합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p60)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버릴 까닭은 없어.” (p147)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173)
스카웃은 아버지가 변호를 맡은 ‘흑인 톰 로빈슨이 백인여성을 강간한 사건’에 관심을 가지면서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 여전히 통용되던 백인중심의 부조리한 가치관을 직시하게 됩니다.
태어난 이후 ‘흑백의 구분’이라는 사회현상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 온 스카웃이지만
메이콤 사람들이 흑인 용의자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 아버지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심지어 떼를 지어 위험천만하고 폭력적인 위협까지 가해오자
적잖은 충격과 함께 자신이 속한 사회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1930년대 미국 남부 소도시의 갈등과 혼란, 그리고 첨예한 인종차별 문제는
어린 소녀 스카웃의 눈을 통해 그려진 덕분에 더더욱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작가가 스카웃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교훈은 어쩌면 거대하고 심오한 것이라기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서 내내 그녀의 좌표가 돼줄 소박하고 진정성 어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 애티커스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변호하려 했던 흑인 톰 로빈슨이나
스카웃이 집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괴롭혔던 이웃의 은둔남 아서 래들리 같은 인물들을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그래서 함부로 죽여선 안 되는 앵무새’에 비유하여 지은 제목을 보면
작가는 스카웃에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다지고 굳건하게 만들기를,
그래서 올곧고 정의롭고 강한 ‘숙녀’로 성장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독자에겐 낯선 인종차별이라는 소재가 전면에 포진한 탓에
미국 (또는 흑백 갈등이 작동하고 있는 나라)의 독자만큼 푹 빠져들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위”로 꼽힌 일이나
첫 출간 후 6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적어도 영미권에서 이 작품이 갖는 절대적인 가치는 분명히 인정해야 될 거란 생각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위대한 개츠비’ 등 최근 읽은 영미권의 ‘고전급 명작들’과 마찬가지로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감이나 여운을 맛보지 못하긴 했지만
나름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읽기 시간이 됐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장르물에 익숙해진 나머지 너무 빨리 책장을 넘긴 게 살짝 후회됐는데,
그래선지 하퍼 리가 이 작품 이후 55년 만에 출간한 후속편 격인 ‘파수꾼’을 읽을 때는
20대가 된 스카웃의 이야기를 조금은 더 꼼꼼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성인이 된 그녀가 자신의 양심의 파수꾼이던 아버지 충돌하며 갈등하는 내용이라고 하니
어쩌면 좀더 공감하기 쉬울 수도, 또 훨씬 더 무겁고 깊은 여운을 맛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