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4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10여 년 전쯤 미드 덱스터의 시즌1 가운데 초반 몇 편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적 복수라는 코드를 좋아하는데다 물러터진 사법체계에 환멸을 가진 탓에

흉악범들에게 끔찍한 천벌을 내리는 주인공 덱스터 모건에게 푹 빠졌던 건데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원작소설을 통해 다시 덱스터를 만나게 됐습니다.

 

덱스터는 이미 소년시절부터 소시오패스의 기질이 몸에 배어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기질이 무차별 살인마로 뻗어나가지 않게 막은 건 그의 양부 해리였습니다.

하지만 양부의 충고는 그런 짓은 절대 해선 안 된다.”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소명을 덱스터에게 물려줬습니다.

감정을 다스리고, 보통사람처럼 스스로를 위장하는 방법부터 실질적인 기술까지 말이죠.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로 덱스터는 본격적인 흉악범 척결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무자비한 응징은 정의감이나 확고한 소신의 산물 따위는 절대 아닙니다.

물론 흉악범들을 처단하기 전에 그들이 저지른 죄를 묻고 비난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물러터진 사법체계를 대신할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는 보편적 감정이나 평범한 일상의 희로애락에 전혀 무감한 것을 넘어

솜씨 좋은 동업자(?)가 토막 낸 희생자들의 사체에 시기와 질투와 부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대상이 흉악범일 뿐 덱스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잔혹한 소시오패스란 뜻입니다.

 

그런 덱스터가 데뷔 무대인 시리즈 첫 편에서 자신을 능가하는 강적과 맞닥뜨립니다.

마이애미 일대의 매춘부를 살해하고 토막 낸 뒤 혈흔 한 방울 없이 내다버리는 범인은

경찰이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고 헤매는 사이 사방팔방에 자신의 전리품을 뿌려놓습니다.

이미 수십 명의 흉악범들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응징해온 덱스터 입장에선

혈흔 한 방울 없이 정교하고 깔끔하게(?) 희생자를 토막 낸 범인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범인에 대한 분노나 복수심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기, 질투, 부러움, 호기심이라고 할까요?

여동생(양부 해리의 친딸)이자 마이애미 경찰인 데보라 때문에 사건에 말려든 덱스터는

범인이 누구인지도 의문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작업이 가능했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위장 매춘부에서 벗어나 살인계로 옮겨가고 싶은 데보라는 덱스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덱스터는 자신의 진짜 의도를 숨긴 채 데보라를 돕기로 결심합니다.

 

설정 자체가 불편했던 독자들은 내용과 관계없이 덱스터의 캐릭터에 대한 악평만 남겼는데

정반대로 그의 기이한 면모에 환호 또는 흥미를 느낀 독자가 훨씬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드라마로 만들어져 여러 시즌에 걸쳐 방송됐다는 건 그에 대한 확실한 반증인데,

실은 책으로 만난 덱스터는 몇 편밖에 못 봤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는 좀더 간결하고 쉽고 대중적인 코드에 맞춰 제작되기 마련이라

덱스터의 복잡한 내면이나 심리보다는 흥미 위주의 사건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론 책에서 심층적으로 다룬 이 내면과 심리때문에 아쉬움이 커진 게 사실입니다.

 

일반인과 소시오패스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가는 덱스터의 내면과 심리에 대한 묘사는

꼭 필요한 분량과 비중을 넘어 지나치게 장황하게 거듭된 나머지 오히려 부작용만 느껴졌고,

그의 내적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 동원된 검은 승객이라는 무의식속의 존재는

갑자기 장르가 바뀌었나, 라는 의문과 함께 사실상 덱스터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그려져서

심하게 말하면, “덱스터 스스로 결정하는 건 별로 없다.”는 식의 인상까지 남기는 바람에

오히려 주인공으로서의 덱스터의 매력과 존재감을 깎아내렸다는 생각입니다.

그 외에도 심령 호러물의 한 대목처럼 읽힌 덱스터의 예지에 가까운 꿈설정,

, 막판에 밝혀진 범인의 정체 및 덱스터의 대처 역시 아쉬웠거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아쉬움들은 아무래도 드라마를 먼저 봤기 때문에 느껴진 것 같은데,

흉악범을 응징하는 소시오패스의 통쾌하고 재미있는 액션 스릴러라는 기대와 달리

어딘가 스티븐 킹의 향기가 연상되는 호러물의 색채가 더 강했기 때문이란 생각입니다.

 

재미와 아쉬움을 동시에 느낀 탓에 이어지는 시리즈를 계속 읽어야 되나 고민하다가

두 번째 작품(‘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까지는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또다시 내면과 심리가 강조되고 액션 스릴러보다 호러물에 가까운 서사를 읽게 된다면

이어지는 작품들을 계속 읽을 자신은 없을 것 같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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