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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판한다 - 마이크 해머 시리즈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30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고백하면, 2020년에 출간된 ‘세상의 모든 책 미스터리’(북스피어)가 아니었다면
미키 스필레인과 그가 창조한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를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제프리 디버를 비롯 여러 작가가 ‘책’을 주제로 쓴 미스터리 앤솔로지인 그 작품의 수록작 중
미키 스필레인과 맥스 앨런 콜린스가 함께 쓴 ‘모든 것은 책 속에’라는 단편이 있는데,
(실은 미키 스필레인의 미완성 원고를 ‘CSI 시리즈’의 맥스 앨런 콜린스가 완성한 것으로)
탐정 마이크 해머가 마피아 두목이 남긴 중요한 ‘책’, 즉 비밀장부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단편이지만 시한폭탄 같은 탐정 마이크 해머의 캐릭터와 냉소 가득한 서사에 반하게 됐고,
인터넷 서점을 통해 2005년 한 해에 세 편의 작품이 동시에 출간된 걸 알게 됐습니다.
‘내가 심판한다’는 ‘마이크 해머 시리즈’의 첫 편으로 원작 출간년도가 무려 1947년입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I, The Jury’입니다. 즉 “내가 심판이고 배심원이고 판사.”란 뜻인데,
주인공 마이크 해머는 말 그대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소신과 함께
“살인범에겐 재판 따위 필요 없고 내가 직접 응징하고 처단한다.”는 행동원칙이 있습니다.
경찰이 아니라 사립탐정이기에 규정이나 규율에 구애받지 않는 그는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파격적 행보와 수사를 감행합니다.
이 작품에서 그가 마주한 사건은 절친이자 전직 경찰인 잭 윌리암스의 참혹한 죽음입니다.
전쟁(2차 대전) 중 위기에 빠진 해머를 구하느라 팔을 잃은 뒤 경찰을 그만둬야 했던 그는
주위에서 정의감 넘치는 호인으로 평가받던 인물이라 살해될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고,
그런 이유로 해머의 분노와 범인에 대한 증오심은 거의 하늘을 찌를 지경에 이릅니다.
역시 절친인 뉴욕 경찰의 강력계 반장 팻 체임버스는 해머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해머는 어떻게든 팻과 뉴욕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색출하여 반드시 자기 손으로,
그것도 잭이 당한 것과 똑같이 고통스럽고 참혹한 방식으로 죽이겠다고 다짐합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마이크 해머는 몸과 마음이 시한폭탄 같은 캐릭터입니다.
194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덕분에 요즘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데,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수사방식은 물론 통제 불능의 바람둥이 기질까지 함께 갖고 있어서
읽는 내내 뜨거운 감자를 물고 있는 듯 좌불안석에 팽팽한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잭이 살해당하던 날 벌어진 파티에 참석했던 자들은 해머의 서슬 퍼런 탐문을 피할 수 없었고
범죄현장에서 해머의 눈에 먼저 띈 중요한 단서들은 경찰에겐 ‘그림의 떡’이 되고 맙니다.
늘 경찰보다 한걸음 앞서 가는 그의 광폭 수사는 때론 위험천만한 상황을 자초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의 45구경 권총은 조금도 주저 없이 불을 내뿜곤 합니다.
또, 마치 본드걸들에게 둘러싸인 007을 연상시키는 그의 열광적인 리비도(?)도 눈길을 끄는데,
폭주하는 수사의 와중에도 자신을 흠모하는 매력적인 비서 벨다와 밀당을 벌이는가 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미녀 의사 샬럿에게 정신없이 빠져들기도 하고,
성욕을 주체 못하는 쌍둥이 자매의 육탄 공격에 비실비실 허물어지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마초 중에도 극상의 마초라고 할까요?
잭의 죽음 이후 연이어 주변인물들이 동일범에 의해 살해되면서 미스터리는 점점 고조되고
해머는 한 손엔 직감을, 다른 한 손엔 단서를 틀어쥔 채 명탐정으로서의 기질을 발휘한 끝에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진범의 정체를 밝혀냅니다.
즉, 해머는 ‘그저 저돌적이기만 한 단순한 탱크’가 아니라
비상한 추리력을 가진 명탐정의 미덕도 함께 갖추고 있다는 뜻인데,
시리즈 첫 편이라 그런지 그의 추리는 다소 산만하게 보인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또, 결정적인 순간마다 ‘갑작스런 깨달음’에 의존하는 장면도 살짝 아쉽게 느껴졌는데
그런 이유들 때문에 평점에서 별 0.5개를 빼긴 했지만
이후 작품들에서 그런 아쉬움들이 어떻게 커버될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1918년생인 미키 스필레인(2006년 사망)은 모두 13편의 ‘마이크 해머 시리즈’를 발표했는데
1996년에 발표된 ‘블랙 앨리’(Black Alley)가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을 집필했지만 그의 진가는 탐정 마이크 해머를 통해 빛났다는 평가이고
그런 면에서 한국에 시리즈 첫 세 편만 소개되고 만 건 너무나도 아쉬운 일입니다.
그나마도 2005년에 한꺼번에 세 작품이 출간된 뒤 아무 소식이 없으니
원작을 읽을 게 아니라면 나머지 ‘마이크 해머 시리즈’를 만날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한국에 출간된 시리즈 2~3편은 각각 ‘내 총이 빠르다’와 ‘복수는 나의 것’인데
아쉬운대로 이 두 작품을 통해서라도 마이크 해머의 매력을 한껏 음미해야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