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버드, 블루버드
애티카 로크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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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00명이 채 안 되는 텍사스의 작은 마을 라크에서 연이어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희생자는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흑인 변호사와 라크에 살고 있던 백인 여성.

텍사스 레인저대런 매슈스는 친구이자 FBI 요원인 그렉에게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정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조사를 시작합니다.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이 연이어 희생당한 사건이라 인종 범죄로 확신했지만

조사와 탐문이 진행될수록 대런은 사건 이면에 또 다른 사연들이 숨어있음을 확신합니다.

ABT(텍사스 아리안 브라더후드)라는 백인우월주의 단체에 대한 의심 역시 접지는 않았지만

대런은 그보다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작은 마을의 복잡하고 참혹한 악연에 더 주목합니다.

 

작품 속 설명에 따르면 텍사스 레인저스는 일반 경찰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혹은 해결하지 않는 범죄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텍사스의 최고 법집행기관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대런 매슈스는 그 가운데 보기 드문 흑인 레인저입니다.

인종차별이 심한 텍사스에서 백인 못잖게 부와 명예를 갖춘 유복한 가문 출신인 대런은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을 다니던 중 거리에서 벌어진 끔찍한 인종 혐오범죄에 충격을 받곤

아내와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안정적인 변호사 대신 레인저의 길을 택한 인물입니다.

애초 그가 정직 상태에 놓인 것도 인종범죄에 휘말렸기 때문이었고,

라크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도 명백한 인종범죄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인종범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백인에 대한 편견 또는 동족에 대한 편애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정의감에 가깝습니다.

 

사건과 주인공 캐릭터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작품의 첫 번째 코드는 인종입니다.

흑백 인종이 드나들 수 있는 술집과 식당이 당연한 듯 분리돼있고

백인이 다수를 점한 법 집행기관은 희생자의 피부 색깔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게 현실입니다.

얼마 전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Black Lives Matter”를 떠올려보면

21세기에 접어든지 20년이 지나도 이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임을 알 수 있는데,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이 연이어 사망한 사건을 수사하는 흑인 레인저라는 설정 때문인지

읽는 내내 어느 한 페이지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흑인 레인저가 수사하는 인종범죄 스릴러에 머물지 않고

수십 년 전 잉태된 뒤 작은 마을 라크를 잠식해온 혹독한 악연과 가족사를 함께 그립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연과 운명에 의해 거듭 증식된 뒤 임계점을 넘어선 끝에

기어이 끔찍한 살인사건들에 이르고 마는 비극적인 과정을 촘촘하고 밀도 있게 묘사합니다.

혹독한 악연과 가족사는 막장에 가까울 만큼 그 강도가 세기도 하지만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실타래처럼 뒤얽혀있기도 합니다.

덕분에 그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대런의 수사는 내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주인공인 대런을 괴롭히는 건 단지 라크의 백인들만이 아닙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가운데 앤젤스 플라이트에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하는데

(가해자로든 피해자로든) 흑인이 개입된 사건의 경우 차라리 진실을 외면할지언정

결코 인종범죄로 비화되는 걸 원치 않는 법 집행기관의 상층부의 정치적 판단은

이 작품에서도 대런의 수사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더구나 수사담당자가 정직 상태인 흑인 레인저라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대런이 이 걸림돌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막판까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이 작품은 애티카 로크의 네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특히 에드거 상과 CWA 스틸대거, 앤서니 상을 동시 수상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론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와 힘과 매력을 지닌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안 그래도 대런 매슈스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출간된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는데

다 읽은 뒤 작가 소개를 보니 2019년에 후속작인 ‘Heaven, My Home’이 출간됐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대런 매슈스 시리즈가 아니라 ‘Highway 59 시리즈라고 이름 붙여진 점인데,

텍사스 외곽의 59번 고속도로 변의 작은 마을들을 배경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품 속에선 이 59번 고속도로가 북쪽으로 가려는 흑인들의 희망을 담고 있다고 묘사됐는데

과연 다음 작품에선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흑인 레인저 대런 매슈스

59번 고속도로 변의 어떤 마을에서 어떤 사연들과 마주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 새해 초부터 만만치 않은 내공의 작가와 첫 만남을 갖게 돼서 너무 반가웠는데

‘Highway 59 시리즈외에 그녀의 전작들도 빨리 만나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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